[피용익의 록코노믹스]일본 거품경제와 함께 무너진 비주얼록

피용익 기자I 2020.08.22 09:09:09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미국에서 글램 메탈이 인기를 끄는 동안 일본에서는 이른바 비주얼계(Visual kei) 밴드들이 록 음악의 메인스트림으로 등장했다. 화려한 패션과 짙은 메이크업, 과장되게 부풀린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로커들은 중성적인 외모와 상반되는 하드하고 헤비한 음악으로 반전 매력을 뽐냈다.

비주얼계 뮤지션들의 패션은 영국과 미국의 글램 로커들에게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일본화하고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음악 스타일은 하드록에서부터 헤비메탈까지 다양했지만, 일반적으로 비주얼 록(visual rock)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한다. 이 명칭은 비주얼계 대표 밴드였던 엑스(X)의 슬로건인 ‘Psychedelic Violence Crime of Visual Shock’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1980년대 초 일본 언드그라운드 신에서 시작된 비주얼계는 엑스, 데드 엔드(Dead End), 벅-틱(Buck-Tick) 등에 의해 주도되면서 1980년대 말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데드 엔드가 1986년 앨범 ‘Dead Line’으로 2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벅-틱의 1988년 노래 “Just One More Kiss”는 오리콘 싱글 차트 6위에 오르며 대중적인 인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주얼계의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밴드는 엑스였다. 리더인 요시키(Yoshiki)가 설립한 인드 레이블 엑스타시 레코드(Extasy Records)를 통해 1988년 발표한 1집 ‘Vanishing Vision’은 10만장 이상 팔리며 오리콘 인디뮤직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오리콘 앨범 차트 19위에 랭크됐다.


엑스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헤비메탈 사운드를 추구하면서도 상업적으로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특히 엑스가 메이저 레이블인 CBS/소니와 계약한 후 내놓은 1989년작 ‘Blue Blood’는 오리콘 앨범 차트 6위에 올랐고, 차트에 100주 이상 머물렀다. 이 앨범에 수록된 록 발라드 “Endless Rain”은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없던 당시 한국에서도 음악 좀 듣는 사람은 다 아는 노래였을 정도로 인기였다. 그리고 1991년 발표된 엑스의 3집 ‘Jealousy’는 오리콘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지금까지 1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엑스의 성공을 통해 상업성이 확인된 비주얼 록 밴드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맞았다. 루나 시(Luna Sea), 라크~앙~시엘(L’Arc~en~Ciel), 라크리마 크리스티(La’cryma Christi), 페니실린(PENICILLIN) 등이 잇따라 데뷔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주얼 록 밴드들의 흥망성쇠가 그 당시 일본의 경제의 모습과 판박이라는 점이다.

1980년대 말 일본 경제를 표현하는 단어는 ‘거품 경제’다. 마치 비주얼계 뮤지션들의 헤어스타일처럼 한껏 부푼 상태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인하로 이어졌고, 주식과 부동산 가치가 급등했다.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지수는 3만8915.87 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후 일본 증시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숫자다. 2020년 8월 닛케이 지수가 2만3000 포인트 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주가가 얼마나 폭등했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거품 경제는 1990년대 초 실물경제가 후퇴하면서 빠르게 무너졌다. 닛케이 지수는 1991년 2월부터 급락했고,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장기 불황을 겪게 된다.

비주얼계의 인기가 급속하게 식은 것도 1990년대 초부터다. 화려한 의상과 짙은 메이크업의 로커들은 당장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어진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비주얼 록 밴드들이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인기는 예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엑스에서 이름을 바꾼 엑스 재팬(X Japan)이나 루나 시 같은 메이저 밴드들은 비주얼계의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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