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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메르스도 버텼는데…여행사들 '깜깜이 해고' 난무

강경록 기자I 2020.08.26 10:26:33

[코로나19 속 길잃은 여행업계①]
줄도산 위기에 무급휴직, 자진퇴사 강요 이어져
사측, 연속 '셧다운'에 버틸 힘 없다 하소연
고용유지지원금 60일 연장했지만 실효성 의문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19일부터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됐다. 이날 오후 서울시내 한 뷔페 매장에 정부 지침에 따라 운영을 중단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정부는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했지만, 정작 사측은 고용유지지원 부담금 10%(정부 90%, 기업 10%)조차 부담이라며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여행업계 한 종사자는 이 같이 절규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대표들의 한숨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 여행사 대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직원은 휴직 중이라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만, 사측은 날이 갈수록 4대 보험, 세금, 퇴직금 등 비용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극단에 내몰린 여행업계의 모습이다. 노동자들은 “고통의 무게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고, 사측은 “우리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고 하소연한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감염병 확산 사태에 여행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급기야는 ‘깜깜이 해고’가 난무하는 상황까지 왔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의 한한령·일본 불매운동 등의 위기에도 꿋꿋하게 버텼던 여행업계가 코로나19라는 큰 장벽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수많은 업계 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융자’나 ‘고용지원’ 같은 간접 지원책에 그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여행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직접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방의 한 오락실이 휴업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사진=뉴시스)
고용유지지원금 연장, ‘해고금지’ 전제해야

우려했던 여행업계 실업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하나투어의 경우 전 직원 2500여 명 가운데 95%가량이 무급휴직 중이다. 모두투어 역시 1100여 명의 직원 중 95% 정도가 무급휴직 상태다. 그래도 이들 대형 여행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A 중소여행사는 20여명의 직원 중 1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서울 명동에서 외국인 손님으로 북적였던 관광호텔도 지난 3월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지금은 직원 40명 중 2~3명만 단축 근무 중이다.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정부는 일단 고용유지지원금 기간을 연장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2020년도 제6차 고용정책심의회’를 열고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기간 240일로 60일 연장 △여행업·항공업 등 8개 업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기간 연장 2가지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로써 연간 최장 180일까지였던 고용유지지원 기간이 최대 240일까지 늘어난다. 9월 15일로 종료 예정이던 여행업·항공업 등에 대한 특별고용유지지원업종 지정 기간도 자동 연장한다.

‘고용 벼랑’ 끝으로 내몰린 여행업계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일찌감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던 업체들의 경우 이미 7~8월로 180일 상한이 다 찼고, 대부분의 업체도 9월로 같은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기간과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기간을 더 연장한다면, 기존처럼 휴업·휴직에 따른 특별 고용유지지원금을 2달간 더 지원받을 수 있어 고용유지에 상당한 도움을 줄 전망이다.

여행업계 근로자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사측으로부터 무기한 무급휴직, 자진퇴사 강요 같은 ‘깜깜이 해고’가 난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각종 고용유지 및 산업지원은 무엇보다 기업·사측의 ‘해고금지’가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재난 위기가 지나고 난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깊은 수렁 빠진 여행업계(사진=연합뉴스)
여행업계, 6개월 이상 ‘셧다운’…이제는 버틸힘이 없다

사측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연장은 환영하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여행업계는 ‘셧다운’ 상태를 6개월 이상 지속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0일 발표한 관광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한 2분기 3개월 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 수는 9만7219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97.9%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내국인 출국자 수는 11만7564명으로 98.4% 줄었다. 전체 출입국 규모는 21만4783명으로 전년동기의 1.8% 수준에 그쳤다.

이 기간 폐업도 속출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2020 2분기 관광사업체 현황’(2020 6월 30일 기준)에 따르면 여행업 등록건수는 총 2만1673건으로 전분기(2만 2115건)보다 442건이나 줄었다. 업종별로 보면 일반여행업 등록건수(5991건)는 전분기보다 9건 늘었지만, 국외여행업(9100건)과 국내여행업(6662건)은 각각 245건, 206건 줄었다. 여행업 등록건수가 전분기와 비교해 400건 이상 하락한 것은 최근 몇 년 새 처음 있는 일로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업 타격이 본격화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위세가 여전한 만큼 여행사 수 하락곡선은 더 가팔라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용 유지 체력이 바닥난 업체에 고용유지지원금 연장은 ‘그림의 떡’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유급 휴직·휴업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급여·보험료 등의 부담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와 상관없이 이미 직원과 고용계약을 해지했거나 그럴 예정인 곳들도 적지 않다. “매출도 없고 언제 회복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고용만 유지하는 것도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고용유지뿐만 아니라 사업체 유지를 위한 지원에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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