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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육성 시급한데‥금융결제원 놓고 엉뚱한 밥그릇싸움

김인경 기자I 2020.11.30 05:30:00

"금결원이 페이업체 관리…검사권, 금융위가 쥔다"
한은 "중앙은행 고유기능, 선 넘지 말라" 강력 반발
"새시장 열릴때마다 충돌…중재자 마련해야"

[이데일리 김인경 장순원 김경은 기자]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다.” “핀테크라는 거대하고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오는데 지금처럼 관리할 수 없다. ”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같은 빅테크·핀테크 업체의 지급결제 관리권을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금융위가 핀테크 산업을 키우겠다며 새 지급결제 규제를 신설하려는 게 발단이 됐다. 좀처럼 말을 얹지 않는 ‘포커페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을 정도다. 국회에서는 이미 두 기관을 맡은 정무위원회(금융위)와 기획재정위원회(한은)가 대리전을 펼치며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문 연 금융위…“금결원 통해 핀테크 거래 들여다보겠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관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갈등의 시작은 지난 7월 금융위가 내놓은 ‘디지털금융 종합혁신 방안’이다. 이 방안에는 전체적으로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핀테크를 육성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금융위는 핀테크의 덩치가 커지는 만큼 위험관리도 필요하다며 디지털 지급거래청산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핀테크 업체 내부거래까지 청산기관(금융결제원)을 통해 외부청산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산은 현금이 아닌 어음, 수표, 신용카드 등의 대금을 주고받을 때 금융회사 사이에서 주고받을 금액을 계산하는 활동이다. A은행이 100만원을 B은행에 송금해야 하고 B은행이 150만원을 A은행에 보내야 한다면, B은행은 청산과정을 통해 A은행에 50만원만 보내면 되는 식이다. 소비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 필수적 절차다. 현재 청산절차는 금융회사들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망에서 이뤄진다. 거액의 지급결제 청산은 BOK와이어가, 소액은 금융결제원이 맡는다.

페이업체들은 고객의 선불 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기관에 맡기고 매일 선불 충전금 총액과 실제 운용자금이 맞는지만 확인하는 느슨한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금융위는 2016년 11조7800억원 수준이던 페이 시장이 지난해 120조원 수준으로 커지고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등의 이용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만큼 페이 관련 법안을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특히 페이업체의 내부 거래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비자의 선불 충전금을 유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청산을 외부에서 하도록 하고 청산기관을 감독하면 이용자의 충전금을 내부 자금으로 쓰는 것을 막는 동시에 자금세탁의 위험도 예방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소액 결제망을 운영하는 금결원을 각종 페이업체의 내부거래를 들여다보는 청산기관으로 지정하고, 청산기관의 허가와 취소, 한은 관련 업무 외의 영역 검사 등의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생시장인 빅테크를 은행과 동일하게 규제하기 위해서 청산까지 포함한 전 영역에 감독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지급결제와 청산은 중앙은행 고유업무” 반발

한은이 반발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지급결제와 청산은 중앙은행의 고유한 업무인데 금융위가 디지털 지급결제 청산을 빌미로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이다. 한은의 반발을 의식한 윤관석 정무위원장은 전금법을 발의하며 ‘금융결제원 업무 중 한은과 연계된 업무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감독·검사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넣었으나 한은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전금법은 원칙적으로 금융위가 지급결제를 관할하고, 부칙에서 한은에 위임하는 것과 같은 결과”라며 “청산 제도화는 중앙은행 지급결제와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비교적 소액거래가 많은 페이 시장의 거래 내역을 모두 들여다보는 것은 과잉규제라는 시각도 있다. 자금세탁 위험이 큰 현금거래도 5000만원 이상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는 것과 견줘서도 지나치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핀테크의 청산업무를 중앙은행이 맡고 있고 중국처럼 ‘왕롄’이라는 별도의 청산기구를 만드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한은 입장에서는 실질적 산하기관이었던 금결원이 금융위의 통제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금결원은 법적으론 비영리단체다. 1986년 중앙은행 기능인 청산을 담당하기 위해 한은과 시중은행 10곳이 함께 출자해 만들었다. 현재도 한은이 사원 총회 의장을 맡으면서 운영비 상당을 내고 있다. 일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금결원은 법적으로 청산기관으로 지정되면 금융위의 산하 기관이 된다.

두 기관의 오랜 앙금 역시 갈등의 불씨가 됐다. 금융위와 한은은 2009년 지급결제제도감독법안을 두고도 충돌했다. 두 기관의 충돌은 정무위와 기재위의 갈등으로까지 번졌다가 결국 18대 국회가 끝나며 흐지부지됐다.

지난해엔 금결원 설립 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금융위 출신인 김학수 원장이 취임하면서 감정의 골이 더 패였다. 한은은 임형준 부총재보를 금결원장으로 보내려 했지만 금결원 노조가 반대했고, 결국 선임 자체를 포기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은이 반발해도 금융위가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 본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핀테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제할 수단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처럼 빡빡한 규제를 받지 않는 핀테크 업체의 내부거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핀테크를 키워놓고, 관리 감독은 한은이 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며 “금융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군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핀테크 영역이 커지면서 새롭게 생겨난 페이 시장을 어느 쪽이 관할해야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모두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두 기관의 영역 다툼으로 비화하기보다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스템이 나올 때마다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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