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법률가들의 기싸움만 난무하는 사법농단 재판

이승현 기자I 2019.04.02 19:26:15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키맨’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에 넘겨진 뒤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달 11일이다. 그가 지난해 11월 14일 구속기소된 지 117일 만의 일이다. 2일까지 다섯 차례 공판이 열렸지만 재판 거래나 인사불이익 등 숱한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기까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헌정사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란 오명을 남긴 사건이지만 재판은 초반부터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이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임 전 차장은 검찰이 위법한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했다고 맞서고 있다. 더욱이 임 전 차장 측이 당초 입장을 바꿔 230여명에 이르는 참고인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서 ‘마라톤 증인신문’을 예고하고 있다.

임 전 차장 주장은 피고인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게 골자다. 구속 상태로 주 3~4회 재판을 받으며 총 20만쪽에 이르는 수사기록 등을 자세히 살펴보는 건 무리라는 얘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지난 2월 보석 신청을 하면서 검찰 측의 ‘트럭 기소’에 따른 방어권 무력화 문제를 지적했다.

애초 이같은 전략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검찰 측이다. ‘정교한 메스로 암세포만 잘라내는 외과수술’이 아니라 모든 혐의를 ‘탈탈’ 털어 재판에 넘긴 탓이다. 사법농단 첫 단추인 임 전 차장 재판부터 비정상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자 검찰은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비판을 해도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세력의 태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2시간이 넘는 ‘셀프 변론’ 역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재판부가 제지하기도 어렵다.

다만 사법농단 사태가 실체적 진실 규명 대신 검사와 전직 판사 간 기싸움으로 흐르는 모습은 꼴사납다. 7개월 간의 수사 끝에 법정으로 간 결과가 법률 전문가들의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바뀐다면 사법부 신뢰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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