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망 100일…방관자들은 여전히 침묵한다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고(故) 정인(입양 전 본명)양이 양부모에게 학대당한 뒤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지 100일째가 됐지만, 사건을 방관했던 책임 주체들의 침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일 시민사회계에 따르면 정인이 입양을 담당했던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홀트)에 대한 특별감사를 비롯한 책임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까지 입양기관의 사후관리 잘못을 놓고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의 사진이 놓여있다.(사진=연합뉴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홀트의 사후관리 잘못으로 아이가 죽었는데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입장인 홀트는 자숙의 시간도 갖지 않고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정상적으로 입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기관은 입양 후 1년 동안 아동의 신체·정서 발달과 양부모와의 유대관계 등 사후 관리를 해야 한다. 홀트 측은 지난 6일 “정인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도 입양절차를 지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 이후 보건복지부 지도 점검에서 입양 절차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미혼모·입양·아동학대 관련 단체는 지난 7일 홀트를 상대로 보건복지부가 특별감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홀트는 물론 관리주체인 복지부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형국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자로 나서 입양 전 사전위탁제도화와 입양체계의 공적 책임 강화 등을 약속했지만, 직무유기한 입양기관에 대한 제재 방안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대표는 “홀트가 나라에서 받는 보조금만해도 500억원에 달한다”며 “국민의 세금이 부담되는 셈인데 더욱 철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지만, 입양기관은 건드릴 수 없는 ‘금단’의 존재인지 복지부는 방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입양기관의 사후관리에 미흡 지적은 계속 이어져왔다.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는 물론 2013년 10월 미국으로 입양된 지 3개월 만에 양부의 폭행으로 숨진 현수도 모두 홀트가 입양 중개를 담당했다. 이에 2014년 복지부의 특별감사를 받은 홀트는 국내 입양된 아동 중 일부에 대해 가정조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전화로만 상담하는 등 사후 관리가 미흡했다며, ‘국내 입양 사후관리 부적정’으로 판단된 바 있다.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인이 입양 절차를 진행한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한 특별감사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학대 신고 때마다 정인이의 상태를 살펴본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도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으로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아보전이 일을 잘못해도 관리감독이 없고,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으니 고인물이 되어 썩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서아보전은 비영리 사단법인 굿네이버스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시는 현재 정욱재 관장을 지난 8일자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정인이 사망으로 기관 설립 16년 만에 처음으로 행정사무감사를 받은 정 관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열린 서울시의회 감사에서 “개인적으로 아동이 사망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서는 할 말이 없고 아이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답변했다.

최근 해당 아보전은 세 번의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뒤 각각 양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양부모의 학대 위험도를 낮게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정인이 양부모를 대상으로 3차례 걸쳐 아동학대 평가 척도가 시행됐음에도 정인이에 대한 보호 조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책임 주체인 경찰은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물어 서울 양천경찰서장과 양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지난 6일자로 대기발령 받았으며, 나머지 현재 직무를 수행 중인 사건 담당자들은 2월 초에 열리는 정기 징계위원회에 넘겨질 예정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자로 나서 지난 6일에 이어 두 번째로 사과했다. 김 청장은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 학대 피해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경찰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응체계 쇄신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