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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제 3법에 집단소송까지"…재계, 엎친데 덮친 격

신민준 기자I 2020.09.24 16:11:43

법무부, 28일 집단소송법 제정안·상법 개정안 입법예고
"이중처벌과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위헌 소지도
소송 남발과 대외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 불가피
"국내 법체계 등과 안맞아…정부 개입 최소화 전제돼야"

[이데일리 신민준 이승현 기자] 정부가 ‘기업규제 3법’에 이어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까지 추진하면서 재계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우려했다.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들은 상시 소송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소송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고용 축소 등으로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의 신중한 판단을 요청했다.

집단소송제 등 도입 시 역효과 발생

법무부는 오는 28일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집단소송제는 미국이 1930년대에 처음 도입한 제도다. 미국은 △증권 △소비자 피해 △노동분쟁 등 여러 분야에서 집단소송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집단소송으로는 석면 소송과 담배 소송 등이 있다.

독일도 제도를 시행 중이지지만 미국과 비교해 제한적이다. 독일은 집단소송에서 개인이 대표당사자를 맡을 수 없고 소비자 보호나 환경문제로 인한 집단 피해 등 공익실현에 관련된 문제만을 다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증권 분야에 한해 집단소송이 도입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분야에 3~5배 한도 배상책임제가 도입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가 대륙법 위주인 국내 법률체계와는 안맞는 만큼 도입 시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기존의 과징금 부과, 형사처벌과 동시에 이뤄지면 헌법상 이중처벌금지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위헌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집단소송제는 소송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에도 영향을 미쳐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미국 등 영미법 국가들은 기업의 잘못에 대해 정부가 개입을 최소화해 민사소송이 활성화됐기 때문에 해당 제도의 도입이 가능했다”며 “영미법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기업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개입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의 개입을 줄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당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중규제”이라며 “해당 제도를 도입하려면 정부의 개입 최소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전했다.

“재계 전체 사기 저하…제도 도입 신중해야”

특히 재계는 소송 남발 부작용을 우려했다. 해당 제도들이 도입되면 소송 금액이 커질 수밖에 없어 악의적 소비자(블랙컨슈머)들과 폭리를 노린 브로커들이 집단소송을 선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가 집단 소송의 대표적인 예다. 폭스바겐은 2016년 미국 소비자 47만5000여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폭스바겐은 총 147억달러(약 17조40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소비자들은 1인당 최저 5100달러(약 580만원)~최고 1만달러(약 1136만원)까지 배상금을 받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맥도날드 커피 소송이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소송 당시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피해자에게 법원은 치료비 16만달러(약 1억9000만원)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48만달러(약 5조6000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이후 맥도날드는 일회용 컵에 ‘커피가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문구를 새겼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기업에 미칠 파급력이나 부작용 등에 대해 사전에 면밀한 검토 없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기업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행위”라며 “대기업보다는 중견·중소기업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중견·중소기업을 제외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경우 소송 남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집단공정소송법을 따로 제정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에 따른 기업의 평판과 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대외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신뢰도와 투명성 등 평가 등에서 점수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들에 대한 잇따른 규제는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재계 전체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행위”라며 “규제 도입 전에 기업에 미칠 파급력이나 부작용 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기업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고 논의하는 절차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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