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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메신저서 靑저격수로…北김여정 ‘대남 총괄역’ 맡나(종합)

김미경 기자I 2020.03.04 16:21:34

北 로열패밀리 위상 변화 주목
“겁먹은 개” 한밤 靑비난 담화
김정은 단순 보좌 비서역 넘어
대내외 노선 핵심축 활약 할듯
섣부른 대응 남북 악영향 우려
靑 “입장 내지 않을 것” 침묵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남북 메신저역할을 해왔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정조준했다. 3일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한밤 기습 담화를 내고 문재인 정부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번 담화는 사실상 진전 없는 남북관계에 대한 ‘통첩성 경고’라는 해석과 함께 김 부부장 본인 명의의 첫 담화인 만큼 그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반응을 삼간 채 북측 기류를 살피는 분위기다. 올초 남북 협력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섣부른 대응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여정 위상 변화 주목…대남 총괄역 전망도

김 제1부부장은 이날 밤 10시40분께 북한군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에 유감을 표한 청와대를 향해 “한미 합동연습은 되고 자신들은 안된다는 건 적반하장”이라며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을 한 것이 아니다”며 자위적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완벽한 바보”라거나 “저능한 사고”, “겁 먹은 개”라는 저속한 표현도 썼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사진=연합뉴스).
이른바 ‘로열 패밀리’인 김여정 명의의 담화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 부부장의 ‘독자 담화’를 놓고 북한 내 그의 영향력이 확대됐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을 단순 보좌하는 비서역할을 너머 대내외 노선 핵심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 부부장의 최근 행보도 눈에 띈다. 그는 작년말 당 전원회의에서 당내 서열 1위인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근 리만건 조직지도부 부장이 전격 해임된 것도 무게를 싣는다.

일각에선 향후 대남관계를 총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여정이 그동안 남북, 북중 및 북미 정상회담에 관여해왔으나 자신 명의로 담화를 발표한 적은 없었다”며 “이번 담화는 자신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할 정도로 그의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이번 담화가 김여정의 역할과 입지변화를 암시한다고 봤다. 양 교수는 “김여정이 대남 총괄 역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여정을 내세워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수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분리했다는 점에서 수위조절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험로 예상…北 내부결속 해석도

북미대화 교착 속 김 부부장이 직접 청와대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 험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김 부부장은 거친 언사로 청와대를 비난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라고 한 점은 상황 관리의 일환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러시아의 지원이 막히고 미국과 협상이 어렵게 되자 북한 입장에선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남측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속내가 엿보이는 동시에 오히려 ‘청와대 때리기’를 통한 내부 결속 및 한국에 여건을 만들라는 속뜻이 담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靑·통일부 “남북 존중” 원론적 입장 되풀이

청와대와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 별도 입장을 내지 않겠다”며 반응하지 않았다. ‘남북 간 상호 준중’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김여정의 발언 배경 등은 살펴볼 수 있다”면서도 “이에 대한 입장을 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을 통해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남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남북관계 경색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상황관리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 센터장은 “단거리 발사체 분야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우리가 북한의 통상적 군사 훈련을 갖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부는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 전략이나 메시지에 문제가 없었는지 심각하게 재검점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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