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살인견 '신원 대조' 논란…"동물은 물건 아니다" 입법 시 개선될까

하상렬 기자I 2021.08.05 19:18:20

'남양주 살인견' 견주 추정 인물 구속영장 기각
法 "증거 부족" 판단에…警 '개 신원 대조' 진땀
'반려동물 등록제' 있지만, 사문화 경향 보여
"'동물 물건 아냐' 개정안, 동물 신원 확립 계기 될 것"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이른바 ‘남양주 살인견(犬)’ 사건이 사고견에 대한 신원 확인 문제로 경찰이 사상 초유의 ‘개 신원 대조’ 수사에 나서는 등 사건이 미궁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동물 신원 확립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대형견. (사진=뉴시스)
‘남양주 살인견’ 수사 암초…사상 초유의 ‘개 신원 대조’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정창국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경찰이 사고 견주로 특정한 A씨의 과실치사·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열고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의 이유를 “피의 사실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2일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야산 입구에서 한 대형견이 50대 여성을 습격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현장 인근에서 불법 개 농장을 운영하는 A씨를 사고 견주로 특정했다. 경찰은 사고견이 지난해 5월 한 유기견보호소에서 A씨의 지인에게 입양됐고, 한 달 뒤 A씨가 지인으로부터 받아 키웠다고 봤다. 전문 감식 기관 분석 결과 유기견보호소에서 입양된 개와 사고견이 유사하다는 판단이 나왔고, 경찰은 이런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입양한 개와 사고견이 동일한 개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영장 기각 이후 경찰은 보강 수사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수사가 될 전망이다. 사람은 지문이나 신분증·유전자 등 법적으로 신원을 입증할 요소가 있지만, 개에게는 식별 칩 외에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 입법예고…“선언적 규정이지만, 동물 신원 확립 계기 될 것”

최근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며 동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단순한 문장만 있지만 법안이 통과된다면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받고 동물 대상 범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후속 조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면서 따라오는 부차적인 법 개정에도 힘쓴다는 방침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개정안이 동물 신원 확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관측한다. ‘남양주 살인견 신원 대조’ 논란 같은 해프닝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개정안이 통과돼 계기가 마련된다면, 동물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 주는 만큼 소유자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반려동물 등록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물론 모든 동물 전체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의 취지와 다른 측면이 있지만, 동물권 향상의 과도기적 단계에서 동물 유기를 막고, 소유자의 책임을 명시하는 등록제가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남양주 사고견도 등록이 돼 있었다면 신원 대조 같은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2개월령 이상 개는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에 동물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을 경우 1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604만 가구인 것에 비해 등록된 반려견의 총 숫자는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32만 1701마리다.

궁극적으로는 동물 신원 확립엔 ‘반려동물 이력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소비자에게 등록 의무를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 단계부터 입양까지 기록하자는 취지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의 채수지 변호사는 “이력제를 통해 동물 등록 시기를 앞당기게 되면 등록의 ‘공백’ 없이 관리가 될 수 있다”며 “개·고양이부터 시작해 최소한 반려동물로 규정된 동물들까지 확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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