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그려진 보험약관 나오나‥'깨알글씨 방지법' 시동

김인경 기자I 2020.12.01 17:35:46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약관법 개정안 제출
공정위서 심사위 만들어 '가독성' 평가하고 시정권고
해외 사례 기준될듯..日 보험, 만화 통해 약관 설명
"금융상품별 성격 달라..입법과정서 충분한 논의 기대"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난독증이 생길 것 같은 금융상품 약관 설명서가 바뀔 수 있을까. 여당이 ‘깨알글씨’ 약관을 없애기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빽빽한 글씨를 키우고 그림이나 그래픽을 통해 가독성을 높여 ‘읽을 수 있는’ 약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약관법의 대상은 헬스장 환불 계약서부터 임대차 계약서까지 다양하지만, 실질적으로 불완전판매가 가장 많은 금융상품을 타깃으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쉬운 약관’ 위반시 시정권고…금융상품이 타깃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22인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약관의 가독성을 심사하고,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관법’ 대상은 각종 금융상품뿐 아니라 공공시설 이용시 환불 계약서, 이동통신 이용계약서, 상가임대차계약서, 놀이공원 및 주차장 이용안내서 등을 망라한다.

무엇보다 불완전판매 이슈가 많은 보험, 은행, 증권, 자산운용사의 금융상품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보험의 경우 변화가 클 수밖에 없다. 이미 보험약관의 경우 지금도 금융당국과 보험개발원이 약관 이해도 평가를 하고 있다. 워낙 특약 등이 다양하고 약관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관 이해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도 시정을 권고할 강제성이 없었다. 그간 약관 이해도 평가를 받지 않았던 은행 예·적금이나 펀드 등의 금융상품 역시 깨알글씨의 약관이 대부분이다.

제출된 법안이 통과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알기 쉬운 약관’ 기준을 정하고, 심사위원회의 약관 가독성 심사를 받게 된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약관은 시정을 권고를 받게 된다. ‘알기 쉬운 약관’의 기준은 하위 법인 시행령에 위임할 예정이다.

해외에선 약관 기준이 마련돼 있는 곳이 많다. 미국은 1978년 ‘생명보험·의료보험 약관용어 간소화법’을 채택하고 가독성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관의 가독성 테스트 점수는 최소 40점, 뉴욕주의 경우 45점이 넘어야 약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뉴욕은 글씨크기를 최소 10포인트, 줄 간격은 1포인트 이상으로 요구하는 등 구체적인 규정도 마련해 놓았다.

일본도 금융당국이 ‘종합감독지침’을 내고 상품인가 단계에서 반드시 약관 명확성 평가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평가표에선 ‘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이 있는지까지 체크한다. 보험사에 대해서는 메모나 만화 형태의 설명자료를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일본 대형 생명보험사인 메이지야스다가 지난 10월 내놓은 ‘생활장해보장 정기보험’의 약관을 보면 138페이지에 달하는 안내서에 만화와 도표로 보장 내역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전문용어나 어려운 표현에 대해서는 본문 옆 여백에 메모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의 생활장해보장 정기보험 약관의 일부.건강 상태나 직업 등의 고지를 고의적으로 누락했을 때 보험이 해지될 수 있다는 내용을 만화로 담고 있다[일본 메이지야스다생명 제공]
금융당국도 ‘환영’…‘시정조치 수위’에 촉각

어려운 약관에 대한 불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19년 금융위원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104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로 ‘공정하고 이해하기 쉬운 약관’(54.5%)이 꼽히기도 했다. 금융위는 지난 9월 보험업계와 협의해 약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림으로 안내하거나 민원 사례을 담는 방안을 권하기도 했지만, 강제성은 없다.

금융당국은 법안을 환영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상품이 전환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은경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해외는 이미 금융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빽빽하게 글씨를 쓰기보다 A, B, C 항목으로 나열하고 그림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금융 소비자의 이해를 높이고 보호를 하기 위한 취지의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업계는 취지에 공감하면서 시정 권고 조치가 포함된 것에 불편해하는 분위기다. 어느 수준으로 시정 조치가 내려지느냐에 따라 상품 출시 등 일정 등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중지명령, 삭제명령, 시정명령 등으로 나뉜다. 법안은 일단 상임위 과정에서 공정위 및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이후 구체화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 성격에 따라 약관의 형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업계의 의견도 법안에 반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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