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연기금, 코스피서 13개월만에 2000억대 매수..`구원투수`되나

최정희 기자I 2018.10.30 16:34:49

국내비중 줄이기로 한 국민연금, 매수 여력 없을 듯
8월말 국내주식 비중 18.9%..연말까지 0.2%p 줄여야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연기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13개월만에 2000억원대의 매수세를 보였다. 증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만큼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것이란 분석이다. 증권가에선 증시 폭락 사태에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연기금이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엔 자금 집행 여력이 부족하단 지적이 나온다.

*코스피,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기준 (출처: 마켓포인트)
◇ 삼성전자·셀트리온 등 시총 상위주 쓸어담아

30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연기금은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2034억원 가량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연기금이 2000억원대 매수세를 보인 것은 작년 9월 7일, 2207억원 순매수한 이후 처음이다. 이 당시엔 북한 6차 핵실험으로 대북리스크가 고조돼 증시가 급락한 이후 반등했던 때다. 이날 연기금이 적극적인 매수세를 보이면서 전체 기관투자가가 5200억원 가량을 순매수해 코스피 지수가 0.93% 상승 마감했다. 하루 만에 2000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는 각각 1800억원, 3600억원 가량을 내다팔았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9일 주가 수준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보인 터라 연기금 등이 저가 매수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엔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1%대 반등하고 중국 상하지종합지수도 상승하는 등 아시아 증시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연기금은 이날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중심으로 쓸어담았다. 시총 1위 삼성전자(005930)를 470억원 가량 사들여 가장 많은 매수세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3분기 17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가가 이달 들어서만 13% 가량 급락해 4만원선도 위협받았다. 연기금은 25일부터 삼성전자를 사들이기 시작해 나흘 간 1000억원대의 매수세를 기록했다.

연기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매수세로 전환된 26일부터 살펴보면 사흘간 2800억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삼성전자(970억원)를 가장 많이 사들였고 셀트리온(068270)(880억원), 삼성전기(009150)(340억원), SK하이닉스(000660)(300억원), 삼성SDI(006400)(250억원), 현대모비스(012330)(240억원) 등이 매수 상위를 차지했다. 코스피 지수도 큰 폭으로 빠진 탓에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TIGER200, KODEX200 등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각각 2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자됐다.

◇ 연기금 `구원투수`로 부족..포트폴리오 재조정은 기대

그러나 증권가에서 바라는 것처럼 연기금이 국내 증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긴 역부족하단 분석이 나온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이 매수한 것에 별 의미를 두긴 어렵다”며 “몇 천억원의 매수세는 현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규모”라고 말했다.

올해는 연기금이 9년만에 처음으로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도를 보인 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2010년부터 작년까지 연 평균 7조1000억원대의 순매수세를 보였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날 순매수까지 합해 2100억원의 매도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연기금 내 큰 손인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점점 줄여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 연말까지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18.7%로 줄여야 하는데 8월말 현재 18.9%(123조6020억원)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말엔 이 비중을 18.0%로 추가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투자 여력이 없는 셈이다. 특히 이달초 발표된 7월말 국민연금기금 운용현황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식 여유자금 배분 규모는 9400억원 정도인데 이미 1~7월에만 1조5751억원이 집행된 상황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오히려 국내 주식에서 자금을 거둬들여야 한단 얘기다.

일각에선 이달초 안효준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기금운용본부장, CIO)가 새로 임명된 만큼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성환 리서치알음 수석연구원은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야 시장의 방향성이 나올 것인데 그 시점이 국민연금 CIO가 선임된 지 한 달이 되는 시기와 맞물린다”며 “한 달이면 투자자산 파악을 끝내고 본격적인 포트폴리오 조정이 있을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락장이 진정되려면 신규 수급 진입 또는 새로운 주도 섹터 등장이 나타나야 하는데 연기금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가 낮은 성장률을 타계하기 위해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건설, 인프라 섹터 등 경협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게 되면 경협주가 새로운 주도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최 수석연구원은 “또 다시 제약·바이오주가 주도주로 등장하면서 시장이 반등하게 된다면 수급에 의해 무너지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며 “새로운 주도주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반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