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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과로사 문제해결 판 깨트려” vs CJ대한통운 “사실 왜곡”

이소현 기자I 2021.01.06 16:58:38

대책위 "설 특수기 진입시 택배물량 폭발..대책 무방비"
CJ대한통운 "보호대책 성실 이행…진행사항 투명 공개"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지난해 12월 22일 배송 중 쓰러진 한진택배 기사는 4번의 뇌수술을 받고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새벽 6시까지 배송했던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다. 다음날 과로사한 롯데택배 기사는 택배 업무 시작 6개월 만에 몸무게가 20㎏ 줄었다. 키가 190㎝가 넘는 건장한 34세 청년은 출근 전 샤워하는 도중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코로나19 장기화로 배송 물량이 늘어난 가운데 택배기사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하루 정도는 편히 쉬게 해주자는 의미로 지난해 8월 14일 ‘택배 없는 날’을 국내 택배 산업이 시작 된 지 28년 만에 지정해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응원했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도 출범했다.

그러나 새해가 밝아도 택배기사들은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낸다. 기사들은 “업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반박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22일 배송 중 쓰러진 한진택배기사가 새벽 6시까지 배송했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에 대한 사측 책임 명시해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해결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며 “택배사들이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진행한 ‘분류작업’과 관련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밝혔다.

오는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생활물류서비스법(이하 생활물류법)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7일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했다. 같은 달 15일 1차 회의에서 분류작업은 택배사의 업무로 합의했지만, 29일 2차 회의에서 택배사를 대표해 참석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1차 회의 합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택배 분류작업을 배송작업에서 분리하도록 개념을 규정하고, 법이든 표준계약서든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에서 분리가 된다면 개선책이 되는 것으로 판단해 회사 측 제안으로 법이 아닌 표준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한 것”이라며 “생활물류법이 상임위를 통과한 후 택배사들은 해당 조항을 표준계약서에 넣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합의기구의 판을 깼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택배사들이 분류작업 인력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작년 10월 22일 국내 점유율 1위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000120)의 박근희 대표이사는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을 불러온 분류업무에 500억원을 들여 지원 인력 4000명을 투입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사회적합의기구합의파기 택배사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김기완 진보당 공동대표는 “CJ대한통운이 2259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했다고 밝혔지만, 강북·강서·노원·동대문·양천·일산동구·여수·세종 등 지역은 이미 예전부터 기사들이 비용을 부담해 투입한 인력”이라며 “지난해 추석기간에는 분류작업 인력을 1000명 투입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 대책위가 파악한 결과 실제 투입인력은 350여명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또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도 1000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상 지금까지 투입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하면서 분류작업 인력 투입으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했다”며 “택배사들은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발표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확인시켜주지 않고 있고, 조합원이 있는 곳만 투입하는 꼼수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대책위는 생활물류법이나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에 대한 회사 측 책임을 명시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접어들고 설 명절 특수까지 더해지면서 1월 중·하순에는 사상 최대의 택배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연이어 발생했던 과로사 행렬이 또다시 재연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은 재벌 택배사의 합의 파기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분류작업을 핵심으로 하는 과로사 대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지금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10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J대한통운 “사실관계 어긋난 주장 유감” 반박

대책위의 발표에 CJ대한통운은 “사실 관계를 왜곡한 억지 주장”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CJ대한통운 측은 “현장 구인난에도 12월 말 현재 2370명의 분류작업 지원 인력이 투입됐으며, 오는 3월 말까지 투입을 완료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투입된 분류작업 지원 인력 228명 중 102명(44.7%)은 지난해 10월 택배종사자 보호 종합대책 발표 이후 투입됐으며, 2회전 배송 인력 투입은 전체 인원의 55.3%로 11월 이후 이들에게 지급된 비용은 회사와 집배점 협의에 따라 추후 정산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책위가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정상적인 종사자 보호대책 이행에 대해서도 악의적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는 택배기사와 종사자 보호 종합대책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진행 경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마련한 1차 합의를 파기 한 것이라는 대책위 주장에 대해서는 합의기구에 참여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합의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이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한편, 대책위가 공개한 사회적 합의기구 1차회의 결과 자료를 보면 ‘택배 분류업무 명확화’를 논의 과제로 삼고 △분류업무 개념 규정 △택배기사 기본업무(집화 배송) 규정 및 분류업무 수행 시 대가 지급과 표준계약서 명시 △외국인 인력 투입 △정부 지원(택배터미널 용지 확보, 분류업무 자동화 설비 구축) 등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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