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반값 배터리' 선언한 테슬라, 국내 배터리 제조사엔 '위기이자 기회'(종합)

경계영 기자I 2020.09.23 16:43:46

원가 절감해 2.5만달러 전기차 선뵌다
더 커지고 저렴해진 배터리 기술 내놔
기술 상당수 국내 배터리3사와 겹쳐
"K-배터리, 소재산업 중심 초격차 나서야"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꿈의 배터리’는 없었지만 배터리 원가 절감이라는 확실한 방향성은 있었다. 22일(현지시간) 테슬라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 공장에서 주주총회에 이어 진행한 ‘배터리 데이’(Battery Day) 얘기다.

다만 원가를 절감하려는 테슬라의 방식은 LG화학(051910)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이미 개발했거나 추진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슬라가 자체 생산 비중을 높인다는 점에서 배터리 제조사엔 위협일 수 있지만 기술 수준이 앞서있거나 비슷한 수준인 만큼 배터리 제조사에게는 협력 강화 등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8개월 안에 배터리 원가 56% 절감”

이날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3년 후 2만5000달러(2900만원가량)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면서 18개월 안에 배터리 원가를 56% 절감하겠다고 공언했다.

테슬라는 새로운 셀(배터리 기본 단위) 디자인을 공개했다. 기존 원통형 ‘1865’ ‘2170’보다 크기를 대폭 키운 ‘4680’이었다. 앞 두 자리 숫자는 지름을, 뒤 두 자리 숫자는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4680 배터리는 지름 46㎜, 높이 80㎜ 크기로 종전보다 에너지 용량을 5배, 출력을 6배, 주행 가능 거리를 16% 각각 늘렸다.

4680 배터리는 프레몬트 공장 인근 새로운 라인에서 생산될 예정이며 2021년 말까지 10GWh까지 늘리겠다는 것이 테슬라 계획이다. 이후 목표치로는 2022년 100GWh, 2030년 3000GWh(=3TWh)가 제시됐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사실상 내재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중대형 원통형’이라는, 배터리 제조사가 쉽게 베낄 수 없는 기술로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며 “배터리 공급 부족 문제를 짚으면서 스스로 답을 내놨다”고 진단했다.

일론 머스크(오른쪽)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2일(현지시간) 배터리 데이에서 새로운 폼팩터의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테슬라 배터리 데이 영상 캡처)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인 LG화학이 연말까지 생산능력을 100GWh로 늘릴 계획이며 현재 파나소닉과 테슬라는 네바다 기가팩토리에서 35GWh를 생산한다. 1GWh는 1번 충전하면 380㎞ 주행하는 전기차 1만66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다. 머스크는 생산비용을 절감하고자 비싼 원재료인 코발트를 사실상 0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양극 활물질(배터리 내 전기를 일으키는 반응을 담당하는 물질)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혹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등이 쓰였던 점을 고려하면 니켈 함량을 더욱 높인 ‘울트라 하이(high) 니켈’로 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음극 활물질로 실리콘 적용을 확대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테슬라는 기가팩토리에서 배터리 셀을 재활용하고 공정 역시 고도로 자동화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절감할 예정이다. 특히 생산 공정에 지난해 인수한 ‘맥스웰’의 건식 코팅 기술을 적용해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을 10% 줄이고 생산성을 7배 높이겠다고 머스크는 설명했다.

양극엔 하이니켈·음극엔 실리콘…국내 3사도 이미 개발중

이날 테슬라가 발표한 원가 절감 방안은 상당수가 국내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과 겹친다. 양극 활물질만 보더라도 이미 국내 배터리 3사는 코발트를 줄이는 대신 니켈 함량을 높이는 하이 니켈 배터리를 개발했다.

LG화학은 내년 하반기부터 니켈 함량을 89~90% 수준으로 높이면서 코발트 함량을 5% 이하로 낮춘 NCMA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값이 코발트에 비해 20배 정도 저렴한 알루미늄을 NCM에 더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출력 성능을 높였다.

삼성SDI는 내년을 목표로 개발하는 5세대(Gen5) 배터리의 양극 활물질로 니켈 함량을 88% 이상으로 높인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를 사용한다. 이미 2015년부터 전동공구 등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에 니켈 함량 88% 이상의 NCA 양극 활물질을 포함했으며 이를 중대형 배터리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은 NCM811(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 배터리를 2018년부터 양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NCM9½½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이뿐 아니라 니켈 비중을 90% 중반대까지 높인 초고밀도 배터리도 개발하고 있다.

테슬라가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한 실리콘의 경우 LG화학은 지난해 음극 활물질에 실리콘을 첨가해 20분에 80% 이상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를 양산해 유럽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에 공급했다. 삼성SDI는 독자 특허로 상용화한 실리콘 음극 소재 SCN을 5세대 배터리에 사용하고, SK이노베이션도 음극 활물질에 첨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오른쪽)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공장에서 열린 ‘배터리 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테슬라 배터리 데이 영상 캡처)


자체 대량 생산엔 ‘의문’…“개발에 집중할 때”

머스크가 발표한 계획은 우리 업체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테슬라가 자체 생산 비중을 높이면 파트너사인 LG화학의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 파나소닉이 주 공급 배터리 제조사이며 LG화학과 CATL은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 배터리 셀을 공급한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투자만 한다고 배터리를 대량 양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머스크가 배터리 데이에서 “2022년까지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긴 어렵다”며 “파나소닉과 LG화학, CATL 등 다른 파트너사에서 배터리 구입을 늘릴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목표하는 가격이 정해진 셈”이라며 배터리 제조사에 가격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선 교수는 “이날 테슬라 기술은 국내 배터리 제조사 모두 채용·개발하는 기술이어서 외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K-배터리’도 소재산업을 중심으로 혁신해 초격차 전략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철완 교수는 “테슬라의 이번 발표는 차세대 플랫폼을 위한 것으로 배터리 업계에 당장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제라도 대응하려면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기술개발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