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목 학점은 빼주세요"…`선택적 패스제`가 뭐길래

오희나 기자I 2020.08.06 16:44:37

부실한 원격강의·시험 집단부정행위에 학생 요구 봇물
학생 원할땐 `A~D 학점` 대신 `P`로…학점 산정 배제
홍익대 이어 서강·동국대 등 궁여지책으로 제도 도입
연세대, `1과목 아예 삭제처리` 학점포기제까지 부활
"기업들이 학점 믿겠나"…교육계, 학점인플레 등 우려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길어지면서 올해 대학가는 1학기 내내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방학 이후 시작되는 2학기에도 상당수 학교가 온라인 강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말이 좋아 온라인 강의, 원격 강의지 준비가 부족한 대학과 대학교수들이 준비한 강의는 충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온라인 상에서 치러지는 시험 역시 집단커닝을 비롯해 곳곳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며 공정성에서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은 학사관리에 난맥상을 보인 대학 측에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해 최소한의 뒷수습이라도 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강의시간이 과제로 적당히 대체되고 예정된 강의도 제대로 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학생들을 줄 세워 평가하겠다는 자체가 비교육적 발상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결국 몇몇 대학들이 궁여지책으로 이 선택적 패스제를 수용하며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하고 있습니다.

선택적 패스제란, 성적이 공지된 다음에 학생들이 A∼D학점으로 표기된 성적을 그대로 유지할지, 혹은 등급 표기 없이 패스(Pass)로만 성적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만약 `패스`를 선택하면 성적표에는 A∼D와 같은 평점 대신 `P` 표시만 남습니다. P로 표시된 과목은 학점 평점에 포함되지 않고 이수한 것으로만 인정됩니다. 가령 특정 과목에서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P로 처리하면 이수만 되고 학점이 깎이진 않는 식이죠.

(사진=연합뉴스)개강 첫날인 3월16일 오전 광주 남구 광주대학교 도서관에서 재학생들이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 방식의 수업을 듣고 있다.



이미 몇몇 대학들이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했습니다. 홍익대가 가장 먼저 이를 도입했구요. 그 뒤를 이어 서강대, 동국대, 세종대, 서울과학기술대 등도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선택적 패스제를 속속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좀더 학생 친화적으로 발전시킨 제도가 연세대가 도입한 재난학기 학점포기제입니다. 연세대는 올해 1학기를 이른바 `재난학기`로 선포하고, 학생들이 수강한 과목 중 일부 과목을 포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단 연세대는 수강 과목 중 1과목만 포기 신청을 허용키로 했습니다.

학점포기제는 한시적으로 수강 과목 성적이 확정된 뒤 불리한 학점을 학사기록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요.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학점포기제가 학점세탁과 학점 인플레이션을 낳는 원흉으로 지목되며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들에 개선을 요구해 2014년부터 사실상 폐지됐었습니다. 연세대가 이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셈인데요. 그만큼 현재 상황이 재난에 준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소리겠죠.

특히 선택적 패스제는 성적표에 기록이 남고 재수강이 불가능하지만 연세대의 학점포기제는 학생들이 포기한 과목을 재수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더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교육학계에서는 현재의 대학 상황이나 학생들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선택적 패스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게 사실입니다. 2013년 국감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런 제도가 학점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나중에 학생들이 취업할 때 기업들이 그 세대의 학점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처럼 100의 기준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지는 못하더라도 80~90의 기준을 맞추고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기업에서 제품을 출고하는데 위기상황이라고 해서 하자 있는 제품을 패스시켜 버리면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믿을 수 있겠느냐”면서 “아무리 위기 중이라도 하자를 내놓으면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성적평가는 교육의 일환이고 교육의 끝맺음”이라고 전제한 뒤 “학생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수업의 질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학업 성취도를 피드백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적을 내는 것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1학기를 반면교사 삼아 2학기에는 좀더 철저한 준비를 통해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 교수는 “2학기에는 학기초에 평가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학생들과 소통해야 한다”면서 “대면수업에서는 행간에 있는 것들이 말로써 소통이 됐지만 코로나19 상황 하에서 글로써 소통할 때는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요즘 컴퓨터 세대들의 특성이라고 하네요. 성적평가 기준에 보고서, 출석, 수업 비중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 자리 이탈 등 강의 중에 지켜야 할 수칙들을 세세하게 제시해야 강의가 원활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합니다.

배 교수는 “지난 학기는 갑작스럽게 닥친 특수한 상황이어서 대응을 잘 하지 못했지만 2학기에는 비대면 수업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만큼 학교나 교수들도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면서 “1학기에는 등록금 반환 시비도 있었고 사이버대학이냐는 자조섞인 얘기도 나왔지만 2학기에는 기준을 정해놓고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1학기때 나왔던 논란이 들어설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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