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름은 이춘복’…입양인 작가 마야가 분노하는 까닭

김미경 기자I 2022.07.07 17:54:24

입양 다룬 책 들고 고국 찾은 마야 리 랑그바드
2014년 작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국내 출간
입양인·여성·퀴어라는 소수자의 슬픈 분노
“변혁 시작에 분노 있어, 건강한 분노 변화 불씨 돼"
"출산율 낮은 한국 왜 계속 보내나" 일갈도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입양인으로서 늘 일상 속에서 감사할 일을 요구 받았습니다. 길에서 살아갔을 수도 있고, 집이 없을 수 있는 만큼 입양에 감사해야 한다는 강요였죠”

한국 이름은 이춘복. 입양아 출신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42)는 입양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상을 이렇게 담담히 표현했다. 7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가진 자신의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난다)의 국내 출간 간담회에서다.

그는 “한국에서는 셀럽들의 입양이 선행처럼 보여지기도 한다던데, 국가 간 입양은 양부모와 입양인 모두에게 좋은 일로 인식되지만 입양 당사자가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다”며 “그것이 이익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7년에 걸쳐 쓴 이 책을 이끌었던 가장 큰 요소는 분노였다고 했다. 마야 작가는 “책을 쓰는 과정은 나를 입체적으로 분노하게 만들었다. 책을 쓰면서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소모하기도 했지만, 쓰면 쓸수록 분노하는 새로운 지점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노는 깊은 슬픔이기도 하다. 슬픔은 친부모로부터 분리돼야 하는 슬픔이기도 하지만 체계적인 입양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도 담겨있다”면서 “분노는 중요하고 필요한 감정이다. 모든 변혁 시작에는 분노가 있었다. 건강한 형태의 분노는 변화의 불씨가 된다”고도 말했다.

살제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Hun er Vred)는 ‘여자(Hun)는’이라는 주어와 ‘화가 난다’는 동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는 식이다. 개인사를 넘어 ‘입양 산업’을 방치하거나 육성한 사회와 그 구조를 향한 분노이기도 하다. 2014년 덴마크에서 먼저 출간된 책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간 입양의 허상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트로 입양 간 작가는 아시아계 입양인, 여성, 퀴어로서 중첩된 소수자로 살았다. 그러다 2006년 피를 나눈 가족과 재회한 그는 2007~2010년 서울에 머물며 국가 간 입양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이 책을 썼다.

마야 작가는 “입양인 공동체에 머물면서 입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입양과 제국주의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국가 간 힘의 균형이 어떻게 입양을 산업화했는지, 입양이 왜 여성 문제이기도 한지 알게 되었다”면서 “한동안은 입양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입양이란 주제가 저한테는 절실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주어를 ‘내가’ 아닌 ‘여자는’으로 표현한 데 대해선 “시집에는 개인적 경험은 물론 다른 입양아의 경험도 섞여있다”며 “책은 공동의 증언이자 선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산율이 가장 낮은 이 나라(한국)에서 왜 입양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혼자 아이를 기르거나 재정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서 해외로 입양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어떤 제도적인 개선을 이루기 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왜 관리되지 못하는지, 국가가 앞서서 손 내밀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일갈했다.

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시의 일부분을 낭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통역에는 이훤 시인이 함께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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