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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박세은 "에투알로 정점?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장병호 기자I 2021.07.19 16:22:16

19일 귀국 기념 기자간담회
지난달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 승급
"프랑스 발레계의 더 큰 에투알 되겠다"
후배들에겐 "경쟁 대신 자신에게 질문하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에투알로 승급한 날, 저만 빼고 다들 제가 에투알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대요. 저는 오랜 시간 연습해온 ‘로미오와 줄리엣’이 관객에게 잘 전해지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런데 공연 시작 전 (오렐리 뒤퐁) 예술감독님이 보낸 꽃이 대기실에 있더라고요.”

지난달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eoile,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발레리나 박세은(32)은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귀국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승급 당일의 기억을 이같이 떠올렸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로 승급한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가진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에투알클래식)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예술감독이 무용수에게 보내는 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레단 내 최고 등급인 에투알만 받을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박세은은 “무슨 의미의 꽃일까 잠깐 생각했지만, 무대에선 온전히 작품에 몰입해 공연했다”며 “에투알 승급도 좋았지만 그날 제가 무대를 제대로 즐겨서 더 좋았다”고 말했다.

박세은은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을 마친 뒤 알렉산더 네프 파리오페라 총감독을 통해 에투알로 지명 받았다. 352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아시아 출신 무용수가 에투알이 된 것은 박세은이 처음이다.

승급이 발표된 순간 박세은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관객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2014년 프리미에 당쇠즈(제1무용수)로 승급한 뒤 언젠가 에투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프랑스 연금 개혁 반대 파업과 연이은 코로나19로 공연 기회가 사라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답답함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박세은은 “그동안 쌓여 있던 답답함이 나도 모르게 빵 터졌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박세은에게 에투알은 발레단 내 최고 무용수 자리에 오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식 발레를 배운 박세은은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 이후 러시아와 전혀 다른 프랑스식 발레를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는 “언어의 답답함, 러시아와 다른 프랑스식 발레 익히기, 그리고 승급을 위한 오랜 기다림 때문에 힘들고 지친 순간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10년간 조금씩 바뀌어온 나의 춤을 관객이 좋아하고 사랑해줬기에 에투알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로 승급한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가진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에투알클래식)
발레단 내 커리어에서는 정점을 찍었지만 박세은은 “아직 보여드릴 춤이 많기에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프랑스 발레계의 에투알 사이에서도 큰 에투알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발레 후배들에게는 “요즘 후배들은 다들 잘 하기 때문에 특별히 해줄 이야기가 없다”며 “예술은 자기와의 싸움인 만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하면서 발레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객석에서 프랑스 무용수들을 보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더라고요. 그 아름다움을 갖고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한 뒤 감독님이 ‘줄리엣이 마시면 잠드는 약을 받고 무릎을 꿇은 채 멍 때리는 장면이 내 마음을 울렸다’고 하더라고요. ‘성공했구나’ 싶었죠(웃음). 표현이든, 테크닉이든, 정제된 아름다움이든, 춤에서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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