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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폭락한 韓증시.."`수급`이 무너졌다"

최정희 기자I 2018.10.30 14:37:52

코스피·코스닥 15~23% 급락
무역분쟁 격전지 中·구제금융 받은 아르헨보다 더 폭락
개인투자자 비중 높은 특성..`빚 내서 주식투자` 무너지며 급락장
국내주식 비중 줄이는 연기금, 9년만에 연초 이후 매도세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무역분쟁과 경기둔화 우려가 전 세계 증시를 뒤흔들고 있다지만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는 마치 금융위기가 온 듯 급락하고 있다. 이달 들어 각각 15%, 23% 급락해 전 세계 증시 중 가장 많이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10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무역분쟁 격전지인 중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된 아르헨티나보다 더 떨어졌다. 이는 단순히 경기둔화, 기업 실적 악화 우려를 벗어나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증시 특성상 수급이 한꺼번에 무너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출처: 마켓포인트) 10월 29일까지 종가 기준, 터키는 26일 종가
◇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 이후 월간 하락폭 최대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29일 2000선이 붕괴되며 1996.05에 마감해 이달 들어서만 14.8% 급락했다. 30일엔 장중 1985.95까지 급락해 연 고점(2607.10)대비 무려 23.8%나 떨어졌다. 코스닥 지수는 이달에만 23.4% 떨어지고 30일, 617선까지 밀려 연 고점(932.01)보다 33.8%나 하락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이달 하락폭은 2008년 10월, 각각 23.13%, 30.12% 급락한 이후 최대다.

여타 신흥국에 비해서도 하락세가 과도하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달 9.9%,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H지수)는 9.1% 떨어져 코스피보다 하락폭이 작았다. 우리나라보다 중국 수출의존도가 더 높은 대만도 가권지수가 13.5% 하락해 우리보다 나은 편에 속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는 13.6%, 신흥국 금융위기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터키는 9.4% 떨어지는 데 그쳤다.

증시가 하락 조정을 받는 이유는 많다. 무역분쟁이 격화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 중반대로 하향 조정되고 있고 내년엔 성장세가 더 나빠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업 실적 전망치도 낮아졌는데 3분기 실적은 낮아진 기대치마져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29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55개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36조8300억원으로 전망치(37조3388억원)보다 1.4% 줄어든 수준이다.

그러나 2009년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금융위기 당시 수준의 하락세가 나타날 만큼 위기 상황은 아니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도한 하락세란 분석엔 별 이견이 없다.

◇ 한국만 보면 ‘금융위기 온 줄’…수급 무너진 구조적 요인

증권가에선 ‘수급이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다른 나라 대비 개인투자자 거래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빚을 내 산 주식’이 한꺼번에 무너졌단 분석이다. 특히 올해는 연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점차 줄이기로 하면서 9년만에 연간 순매도로 전환된 해다. 연기금은 2010년부터 작년까지 연 평균 7조1000억원의 순매수를 보여왔으나 올해는 4200억원 가량 순매도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돈을 빼갈 때마다 떠받쳤던 매수세가 사라진 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1월~10월 29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 거래비중은 51.5%에 달한다. 84.5%에 달하는 코스닥 시장보단 적지만 절반 이상을 개인에 의존하는 시장이란 얘기다. 최성환 리서치알음 수석연구원은 “상반기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금액은 코스피, 코스닥 합산해 10조원에 육박했다”며 “개인투자자 물량이 빠져야 증시가 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고점에서 팔았어야 할 주식을 안 팔고 버티다가 저점에서 한꺼번에 팔면서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손해를 보고 팔았단 얘기다.

실제로 연초 이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각각 6조8000억원, 3조9000억원 가량을 매도할 때 개인투자자만 11조7200억원을 순매수했다. 11일 4~5% 급락한 이후에도 버티다 주가가 회복하지 않자 지난주 들어서야 6800억원 순매도를 보였다. 개인투자자 특성상 ‘빚 내서 투자한 주식’이 하락장의 기폭제가 된단 점도 부담이다. 실제로 이달에만 반대매매가 4000억원 가량 쏟아졌다.

연기금은 연말까지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18.7%로 줄이고 내년말엔 18%로 추가 축소키로 하면서 매수 여력이 크지 않단 점도 수급이 나빠진 원인으로 지목된다. 8월말 국민연금의 주식보유 규모는 123조6020억원으로 전체의 18.9%를 기록하고 있다. 외려 보유규모를 줄여야 하는 셈이다. 코스피 시장에서 연기금의 거래비중(올해 1월부터 10월말까지)도 2015년 4.7%, 2016년 4.5%, 작년 4.0%, 올해 3.2%로 감소세다.

매수세가 없으니 자연히 주가 하락 일로가 계속되고 있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주가의 큰 폭 하락으로 추가 반대매매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하락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격 경쟁력 회복을 위한 원화 약세, 중국 경기 부양 확대, IT투자심리 개선 등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국내 증시 반등을 위한 단서가 미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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