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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데 가겠나" 손님 뚝, 화재 공포도.. 위기의 전통시장[르포]

이영민 기자I 2024.01.24 16:49:51

■서천시장 화재 후 전통시장 가보니
추위에 손님 떠날세라 온열기 종일 작동
툭하면 터지는 수도, 비닐·천막으로 막아
"오래된 시장에 전기설비·소화전 늘려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설 대목을 앞두고 들떠 있어야 할 전통시장이 한파에 화재 공포까지 ‘이중고’에 시름하고 있다. 찬 바람을 피해 실내에 머무는 이들이 늘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뚝 끊겼고 서천특화시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 온열 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24일 서울 광장시장에서 상인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도로, 종일 영하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 이영민 기자)
추위에 손님 발길 뚝, 곳곳엔 화재 위험 신호

24일 오전 서울 내 전통시장. 평소라면 관광객과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북적일 시간이었지만 급작스레 찾아온 역대급 한파 탓에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손님들의 발길은 끊겼고 입구를 쳐다보며 입김을 하얀 내뿜는 상인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30년 넘게 호떡장사를 하고 있다는 강모(52)씨는 오전 10시부터 긴 목도리로 얼굴과 목 주위를 동여맨 채 아침 장사를 준비했다. 강씨는 “여기 노점에서 일하는 분들은 추울 때 진짜 힘든 게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면 물이 터진다. 지난주에도 수도관이 터져서 다 갈았다”며 “위는 지붕으로 어떻게 막았는데 다른 곳은 바람을 못 가리니까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서 큰일”이라고 토로했다.

강씨와 마찬가지로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당수는 한파에 직접 노출돼 있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온열기구 등 방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서천특화시장의 사례처럼 화재로 번질 우려가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강씨처럼 추위에 떠는 노점상들은 손님을 위해 점포 안에 온열기를 여러 개 두고 비닐과 천으로 가게 양옆을 둘렀다. 일부 가게는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고압가스통 위에 온열기를 틀고 있었고 다른 점포에는 냉장고와 온열기, 튀김기 등 각종 조리기구와 조명의 전선이 콘센트에 문어발식으로 연결돼 있었다. 이곳에서 40년째 해산물을 팔고 있는 김모(68)씨는 전기설비 탓에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오래된 시장이라 난방과 전기설비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상인회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더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광장시장 내 한 상점에 콘센트가 어지럽게 꽂혀 있는 모습. (사진= 이영민 기자)
다른 시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포장지와 비닐을 판매하는 가게가 모여 있는 서울 방산시장엔 물품들이 어지럽게 거리를 채우고 있었고 상인들은 소화전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곳에서 포장지를 판매하고 있는 윤모(54)씨는 “여기 20년 있었는데 주변에서 소화전을 본 적이 없다”며 “대부분 오래된 건물이라 최근에 지은 상가를 빼면 소화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게 웬만큼 길을 정리했는데 종이를 취급하는 곳이 문제”라며 “손님이 많이 줄었고 길에 내놔야 손님들이 보고 가니까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전통시장의 모습 (사진= 이영민 기자)
“정부가 전통시장 환경개선 사업에 나서야”

문제는 이런 화재 위험이 실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통시장 화재는 총 526건 발생했다. 이로 인해 40명의 인명피해(사망 1명, 부상 39명)와 1359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불은 누전 등의 전기적 요인(44.8%)과 부주의 (30.1%), 기계적 요인 (9.1%) 등에 의해 주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예방을 위해 정부가 환경개선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시장은 점포가 붙어 있고 불에 잘 타는 물건이 많아서 불이 나면 대형화재로 이어지기 쉽다”며 “전기 배선이 한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각 점포로 들어가서 전선이 거미줄처럼 엮이는데 겨울에는 전열기구 사용 때문에 불이 날 가능성이 더 크다. 이걸 개인이 고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가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와 전기·난방 설비를 지원하는 환경개선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22일 서천특화시장에선 큰불이 나 292개 점포 중 227개가 모두 소실됐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정부와 자치단체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소방청은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와 같은 유사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오는 31일까지 전국 전통시장 1388곳을 대상으로 긴급 화재안전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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