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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은혜 “잘 살자 죽지말고”, 장차현실 “1순위 엄마 아니었으면”

김미경 기자I 2022.08.24 16:35:55

발달장애 화가·배우 정은혜씨 첫 그림에세이
이야기장수 통해 책 ‘은혜씨의 포옹’ 펴내
세상 경계 무너뜨리는 포옹 장면들 담아
드라마 ‘…블루스’ 노희경·한지민도 그려
함께 출연한 배우 김우빈, 전시장에 화환 선물

정은혜 작가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열린 ‘은혜씨의 포옹’ 출간 기자간담회 시작 전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음, (이런 자리에 온 게) 다 내 덕이지. (웃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다. 그리고 잘 살자. 죽지말고.”(화가 겸 배우 정은혜 작가), “이제는 은혜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발달장애(다운증후군)를 가진 화가 겸 배우 정은혜 작가와 어머니 장차현실씨 두 모녀가 24일 정 작가의 첫 그림에세이 책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서로를 향해 꺼낸 말이다. 이날 현장에서 책 출간으로 수고한 서로에게 한 마디씩 부탁하는 질문이 나오자, 모녀 사이 오간 대화다.

정 작가는 최근 첫 그림에세이책 ‘은혜씨의 포옹’(이야기장수)을 출간하고, 오는 30일까지 책에 수록된 그림을 전시하는 개인전 ‘포옹전‘(서울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을 연다. 정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책 출간 소감을 묻자 “기분이 딱, 좋아요. 눈에 들어오는 주황색 표지, 색깔들도 마음에 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은혜(오른쪽) 작가가 24일 오전 서울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은혜씨의 포옹’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어머니 장차현실 씨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은혜 작가는 지난 6월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면서 주목받았다. 배우 한지민의 다운증후군 언니 ‘영희’ 역을 맡아 더욱 유명해졌다. 이날 전시장에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김우빈 배우 등이 보낸 화환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 작가는 “꽃도 보내주고 고맙고. 저한테 잘해주죠”라며 “(드라마를 쓴) 노희경 작가님도 이런 좋은 드라마를 주셔서 감사하다. 음 따뜻한 말도 해주시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화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생후 3개월에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어린 시절은 집에서 엄마와 즐겁게 보냈다. 학령기에 접어들어선 친구들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스무살엔 시선 강박, 조현병 등으로 큰 고통을 겪으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화가인 엄마의 화실에서 청소를 시작했다. 화실에 나온 60여명의 아이들을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방 밖으로 나왔다. 2016년부터는 경기 화성의 복합문화공간인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니 얼굴 은혜씨’라는 간판을 걸고 지금까지 4000여명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이번 첫 책에는 정 작가가 직접 안아주고 안긴 사람들, 오래도록 꼭 끌어안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을 담았다. 배우 한지민, 김우빈, 작가 노희경,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가수 이은미, 백기완 선생 등 작가가 만난 이들을 그린 그림과 함께 그의 짧은 글이 페이지마다 수록돼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 확보를 위해 투쟁할 때 삭발한 엄마 장차현실씨의 모습도 실었다.

어머니 장차현실씨는 “딸 사진첩을 보면서 유독 포옹하고 있는 장면이 많다는 걸 알았다. 키 150㎝의 체구인데 170㎝ 정도인 사람과 안고 있으면 머리가 심장에 닿더라. 포옹은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허무는 몸짓”이라며 “팬데믹 속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책 기획배경을 전했다.

최근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로 촉발된 장애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 관련 발언도 나왔다. 장차현실 씨는 “드라마(우영우)를 보고 마음이 힘들다는 분(장애 가정)들도 이해된다.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좋은 기회가 늦어지기도 하고, 못 찾기도 한다”며 “드라마가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다. 우영우를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 가까워지고, 관심을 갖게 됐다.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소중한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혜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은혜가 33살이거든요. 너무 당연해요. 은혜가 이끌어가는 세상에 있어야 하죠. 엄마는 그 영역에서 빗겨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보니까 나중에 우영우씨가 극중 이준호씨와 연애를 하더라고요. 막 울었어요. 고마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은혜 작가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열린 ‘은혜씨의 포옹’ 출간 기자간담회 시작 전 작품 앞에서 언론 인터뷰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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