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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전설' 존 노이마이어 "안무는 새로운 세계 창조하는 일"

장병호 기자I 2024.04.24 18:30:00

현존하는 세계 최고 발레 안무가
국립발레단 신작 '인어공주' 위해 내한
"내 작품 철학은 '발레의 인간화'"
안데르센에 초점, 디즈니 애니와 차별화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창의력이 최고였던 시기가 언제였냐고요? 그날을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발레 안무가로 손꼽히는 존 노이마이어(85)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고령이라고 믿기 어려운 정정한 태도, 무용에 대한 남다른 철학에서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 ‘인어공주’의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왼쪽)가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국립발레단)
발레계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노이마이어의 작품 세계를 다음달 한국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립발레단은 제200회 정기공연으로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인어공주’를 오는 5월 1일부터 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미국 출신의 노이마이어는 클래식한 발레 동작에 현대적인 연출과 드라마를 가미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안무가다. 1973년부터 최근까지 독일 함부르크 발레단 예술감독 겸 수석안무가를 맡고 있다. 한 안무가가 51년째 같은 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는 것은 흔치 않다.

대학에서 문학과 연극을 전공한 노이마이어는 안무는 물론 조명과 무대 등 연출까지 모두 직접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안무가의 특권은 무용수를 재료로 삼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이라며 “상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구현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안무와 분장·무대·조명이 다 맞아떨어질 때까지 작업한다”고 작업 방식을 소개했다. 또한 “‘인어공주’를 비롯한 내 작품의 철학은 발레를 인간화(化)하는 것”이라며 “무용수가 살아 있는 감정의 형태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이마이어와 국립발레단의 만남은 강수진 단장과의 오랜 인연으로 이뤄졌다. 노이마이어는 강 단장이 독일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시절(1986~2016) 안무가와 무용수로 인연을 맺었다. 강 단장은 노이마이어의 ‘카밀리아 레이디’로 무용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다. 노이마이어는 “강 단장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훌륭한 해석자였다”며 “매 작품 호기심을 갖고 작업에 임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부크르 발레단이 선보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공연 장면. (사진=국립발레단)
‘인어공주’는 노이마이어가 원작 동화를 쓴 작가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5년 로열 덴마크 발레단을 통해 발표한 작품이다. ‘인어공주’의 원작자인 안데르센의 외롭고 상처투성이였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안데르센의 분신 같은 캐릭터 ‘시인’이 전체 작품을 이끄는 것이 특징이다.

노이마이어는 발레 ‘인어공주’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인어공주’의 원래 주제는 아름다운 존재인 인어가 사랑을 위해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다”라고 말했다.

작품 속 인어공주는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일본 전통 가무극 중 하나인 ‘노’(能)에서 착안한 설정이다. 노이마이어는 “‘노’의 출연자 중 한 명이 바닥까지 길게 내려온 바지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며 “‘인어공주’는 일본의 ‘노’는 물론 발리의 전통춤 등 동양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안무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발레 무용수와의 본격적인 첫 작업에 거는 기대도 크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리허설에 참여한 지 하루밖에 안 돼 국립발레단에 대해 평가하긴 힘들다”면서도 “함부르크 발레단에는 한국인 무용수가 여러 명 있는데 이들은 매우 특출나다. 국립발레단과의 작업도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국립발레단 ‘인어공주’의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왼쪽)과 강수진 단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이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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