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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어깃장에 '도하합의' 불발…원유시장 단기충격 불가피

장순원 기자I 2016.04.18 15:11:41

사우디 막판 이란 참여 고집해 합의 무산
단기적으로 하락압박‥공급과잉 구조 지속
6월 오펙총회까지 안갯속‥사우디 영향력 약화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주요 산유국이 카타르 도하에 모여 산유량 동결문제를 논의했지만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믿었던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막판에 판을 엎었기 때문이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석유시장은 실망감이 역력하다. 유가 향방도 다시 안갯속으로 접어들었다.

◇도하 회의 성과 없이 무산‥사우디 막판 어깃장

모하메드 빈 살레 알-사다 카타르 에너지장관이 17일(현지시간)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합의도출에 실패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로이터통신
사우디와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 18개국이 도하에서 생산량 동결을 논의했지만 합의도출에 실패했다고 파인낸셜타임스(FT)를 포함한 외신이 1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란의 동참 없이는 산유량을 동결할 수 없다며 갑작스럽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은 이미 회의 전 오는 10월까지 지난 1월 수준의 산유량으로 동결하기로 하는 합의문 초안까지 작성했다. 사우디의 동의하에 동결에 대한 논의가 꽤 심도 있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사우디가 다된 협의에 재를 뿌린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을 포함해 주요 산유국이 모두 동의해야 생산량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참여를 다시 조건으로 내세운 셈이다.

이란은 도하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은 2012년 제재 이전 수준으로 산유량이 늘어날 때까지 계속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런데도 사우디가 이란을 빌미로 동결 합의를 무산시킨 것은 석유를 지렛대 삼아 정치적 앙숙인 이란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는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과 오랜 정치적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석유장관은 “회의 전에 기본합의를 해놓고 초안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의외”라면서 “모두 산유량 동결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 셰일 산업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고사단계에 접어들었던 미국 셰일 업계가 국제유가가 반등하면 다시 경쟁력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중동 산유국 안팎에서는 형성돼 있다.

◇국제유가 하락압박‥오펙 총회 열리는 6월 돼야 가닥

시장은 실망한 빚이 역력하다. 국제유가는 산유국의 동결합의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올 들어 40% 이상 올랐다. 그런데 이날 합의가 무산되면서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추이(WTI 기준). 출처:마켓워치
전문가들도 단기적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날 시간외거래에서 국제유가는 장중 5% 넘게 곤두박질쳤다. 뉴욕 상품시장 시간외거래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배럴당 38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투자은행 내틱시스의 원유 애널리스트 아비셰크 데슈판데는 “수일 내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로 폭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도하회의가 애초부터 공급과잉이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유가 하락폭은 제한될 것이란 의견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 셰일 생산량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도 유가 하락을 막는 재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가의 향방은 오펙 총회가 예정된 6월이 돼야 가닥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석유시장에서 오펙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산유국이 일사불란하게 협조해 행동에 나서기는 더 어려워졌다”면서 “오펙 내에서도 이해관계의 충돌이 자주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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