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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알려줌"…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 판결 이유 '나 몰라라'

이소현 기자I 2021.11.30 16:01:44

'깜깜이 재판' 소액사건, 판결 이유 몰라 항소 4% 수준
소액사건 1건에 30분…"권익보다 법원 행정편의주의"
"판결문에 이유 기재하고 소액기준 법률로 정해야"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민사소송의 70%에 달하는 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이 판결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재판’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3000만원은 최저임금 근로자의 16개월치 월급에 육박하며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금액이지만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소액사건으로 분류, 법원이 판결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액사건은 ‘나 홀로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판결 이유를 몰라 항소 등 후속조치를 취하는데 큰 제약이 있어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액사건 판결문(왼쪽)과 민사사건 판결문 비교(자료=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30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알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며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을 촉구했다.

소액사건은 전체 1심 민사본안사건 중 70% 이상 대다수를 차지한다. 주로 대여금과 임금 등 민생현안과 직결되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소액사건심판법에 의하면 소송 목적의 값이 3000만원 이하인 소액사건은 단순히 금액의 기준으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판결서 이유 기재 생략’과 같은 민사소송법상 여러 특례가 적용된다.

이날 경실련이 공개한 소액사건 판결문을 보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을 원고가 부담한다’는 패소 판결과 함께 ‘소액사건 판결문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 2의 3항에 따라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국민의 권익보다 법원의 행정편의주의가 강조됐다는 지적이다. 경실련은 “국민은 일상생활의 다툼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최후의 방법으로 법과 국가기관에 소송 제기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지만, 법원이 정한 소액기준에 따라 알권리와 상급심의 재판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불복해도 항소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다. 패소한 이유를 모르니 법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경실련의 집계에 따르면 소액사건에 참여하는 소송당사자 10명 중 8명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한다. 비전문가인 소송당사자는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더라도 판결 이유를 알 수도, 유추하기도 어려워서 항소심 청구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소액사건으로 2심을 진행하는 항소비율은 4.1%에 불과하다. 제1심 일반 민사사건 항소율의 5분의 1수준이다.

1심 민사사건 항소율 비교현황(자료=경실련)
법원이 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민사소송상 부담을 소송당사자에 전가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실련이 국회·법원에서 제공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액사건 담당 법관 1명이 처리하는 소액사건은 1년에 약 4000건으로 일반 민사사건(433건)의 10배 수준으로 조사됐다. 사건 기준으로 보면 소송당사자가 소장을 접수하고 판결문을 받아볼 때까지 법관이 해당 사건에 할애한 시간은 평균 31분에 불과했다. 경실련은 “소액사건의 당사자들이 보통 6개월을 기다리고 2년이 넘는 기간 소송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고작 30분 검토한 이유 한 줄 적히지 않은 판결문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사사건 법관 1인당 담당건수 및 처리시간 비교현황(자료=경실련)
소액사건 금액 기준은 1973년 소액사건심판법 제정 당시에는 법률로 정하도록 했지만, 1980년부터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경실련은 “독일의 소액사건의 기준은 82만원, 일본은 610만원이고 모두 법률로 규정한다”며 “한국은 1980년부터 꾸준히 상향되다 보니 민사사건 대부분이 소액사건에 해당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은 20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으며, 21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도 논의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소액사건심판법의 판결서 이유 기재를 생략할 수 있는 특례의 폐지를 요구하며 국회가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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