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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 된 비둘기, `먹이 금지법` 두고 갑론을박

이유림 기자I 2024.01.04 14:43:58

유해 야생동물 먹이 금지법 국회 통과
입법 배경엔 비둘기 먹이 관련 민원 증가세
동물단체 "굶겨 죽이려는 건가…종 차별"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유해 야생동물 먹이 주기’를 금지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다만 비둘기·고라니 등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한 데 이어 먹이까지 금지한다면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굶어 죽거나 포획단에 의해 사살되는 것밖에 없다는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시내 한 빗물 웅덩이에서 비둘기가 목욕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동물보호연합·평화의 비둘기를 위한 시민모임 등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해 야생동물 먹이 주기 금지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해당 법은 지난달 20일 본회의를 통과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이다. 지자체장이 조례로 유해 야생동물 먹이 주기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담겼다.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개정안은 공포 1년이 지난 오는 12월 20일 이후 적용된다.

현재 유해 야생동물은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분변(糞便) 및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의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 △장기간에 걸쳐 무리를 지어 농작물 또는 과수에 피해를 주는 참새, 까치, 까마귀, 어치 등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꿩, 고라니, 청설모, 두더지 등 △인가 주변에 출현하여 인명·가축에 위해를 주는 멧돼지 및 맹수류(멸종위기 제외) 등으로 규정돼 있다.

특히 도심에서는 비둘기 먹이 주기 행위를 둘러싸고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15년 1129건에서 2022년 2818건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흩뿌려진 음식물과 깃털 날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 등이다.

지난해 8월 대구 아파트 단지 주변에 멧돼지 출몰해 사살(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동물단체는 기자회견에서 “환경부는 비둘기·고라니 등 많은 동물을 유해 야생동물이라고 무책임하게 지정해 왔는데 이는 대표적인 인간 이기주의자 ‘종(種) 차별주의’”라며 “자연은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는 한때 ‘평화의 상징’이라며 비둘기를 수입해 이용만 하다가 이제는 관리가 힘드니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굶겨 죽으라며 법까지 만들었다”며 “인간과 비둘기가 서로 공존공생하는 인도적 방법은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번 야생생물법 개정안은 고라니·멧돼지 등 다른 야생동물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이들이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이유는 산에 먹을 게 없기 때문이고 이는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 즉 산림훼손 때문이다. 결국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농작물을 먹다가 포획되어 사살되거나 굶어 죽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단체는 비둘기에게 불임 성분의 사료를 먹이는 방안 등으로 개체 수를 조절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생태계 파괴와 산림훼손으로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보호 명분 아래 야생동물을 굶겨 죽이는 야생생물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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