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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상인들 온누리상품권 '현금깡'..노숙자까지 이용

채상우 기자I 2015.09.23 14:17:11

1570곳 가맹점 적발..4900만원 부당이익 취득
개별 가맹점에 대한 규제 개선 마련 無
중기청 "할인판매 기간 끝나면 문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얼마 전 전통시장 상인 B씨는 노숙자 A씨에게 10% 할인된 온누리상품권 90만원 어치를 사오면 1만원을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노숙자 A씨로부터 온누리상품권을 받은 B씨는 은행에서 액면 금액 100만원으로 상품권을 환전했다. B씨는 간단하게 9만원의 차익을 챙긴 셈이다.

메르스 여파로 침체된 전통시장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한 온누리상품권 특별할인을 악용한 일명 ‘현금깡’을 자행한 가맹점이 대거 적발됐다. 적발된 규모만 1570곳이며 이로 인한 부당 차익은 4900만원에 달한다. 4900만원의 혈세가 상인들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옮겨간 것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6월29일부터 오는 25일까지 메르스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온누리상품권 10% 특별할인을 실시해 지난 18일 기준 2412억원을 판매했다.

중기청의 의도와 달리 최근 실시한 현장 조사 결과 일부 상인들이 특별할인을 악용해 부당 이익을 취득했다. 그들은 노인정을 통해 노인들을 모집하거나 구둣방으로 불리는 상품권 도매업자와 결탁해 10% 특별할인가로 온누리상품권을 대량 구매했다.

연고지가 없는 노숙자들도 이들의 이용 대상이 됐다. 가맹점주는 상품권을 직접 구입하지 못하니 사회적인 약자를 대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대량으로 구매한 온누리상품권을 액면가로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온누리상품권 ‘현금깡’ 관련 표. 자료=중소기업청
정부가 뒤늦게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개선 방안에는 날이 서 있지 않다. 정부의 개선 방안은 다음과 같다. 가맹점뿐 아니라 가맹점이 속한 지역 시장상인회에도 환전 한도를 제한한다. 기존에는 가맹점만 월 1000만원의 환전 한도가 적용됐다.

개선 안에 따라 시장 점포 수를 기준으로 △100개 미만인 시장상인회는 월 1억원 △500개 미만 100개 이상이면 월 3억원 △1000개 미만 500개 이상은 5억원 △1000개 이상은 7억원으로 시장상인회에도 환전 한도가 제한된다. 가맹점이 직접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 시장상인회를 통해 환전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전을 하는 다른 통로에 제한이 들어갔을 뿐 개별 가맹점에 대한 직접 환전제한이 강화되는 조치는 아니라는 데 있다. 시장상인회가 한도에 걸리면 가맹점이 직접 은행을 방문해 환전을 하면 그만이다. 개별 가맹점에 대한 환전 한도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가맹점은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 환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에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현장대응반’을 지난 7월부터 운영하고 있지만 5개 소상공인진흥공단 지역 본부에 2명씩 파견돼 있어 17만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감독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번에 적발된 가맹점에 대한 제재조치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중기청은 24곳의 가맹점을 1년간 등록 취소하고 7곳의 가맹점에 대해 2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1539곳은 주의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 12만원 이하의 부당이익을 취득한 가맹점은 모두 과태료를 부과했으며 그 이상은 가맹점 취소를 적용했다. 1만원~ 5000원 규모의 부당이익을 챙긴 가맹점은 주의 조치를 줬다.

질서행위 위반 규제법에 따르면 1번만 위반사례가 적발돼도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7곳은 모두 2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사소한 부주의나 오류를 범한 경우는 절반의 과태료를 경감한다’는 애매한 뉘앙스의 조항 때문이다. 사사로운 감정이 적용되기 쉬운 해당 조항은 중기청에 의해 판단된다. 부당행위의 근절을 목표한다는 중기청이 불법을 자행한 상인을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은행 간 구매자 정보 교환을 통해 개인당 월 30만원 이상 할인 판매를 제한하는 등 추가적인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며 “현재 규제가 완벽히 부당한 행위를 근절하기는 힘들지만 할인판매 기간이 곧 끝나는 만큼 자연스럽게 일이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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