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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증 받고도 무국적 된 이주배경 자녀, 대법 "국적 인정해야"

장영락 기자I 2024.04.09 15:27:41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행정 실수로 무국적자가 될 뻔했으나 5년 소송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연합
9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 남매가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적 비보유 판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12일 원심 원고패소 판결에 대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A씨 남매는 1998년과 2000년 사실혼 관계인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이 국적법에 따라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부모가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여야 한다. 아니면 부모가 따로 ‘인지 신고’를 하거나 부모 귀화 시 함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단 이는 모두 미성년자 상태일 때만 가능하며, 성인이 된 후에는 직접 귀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남매 부모는 1997년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읍사무소에서 모친 호구부 원본을 분실했고 중국 대사관이 호구부 재발급을 거부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중국에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는데, 남매 부친이 2001년 출생 신고를 하자 행정청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2008년에는 가족관계등록부도 작성해줬고, 남매가 17세가 된 해에는 주민등록증도 발급됐다. 행정상 한국 국적을 가진 것을 전제로 이뤄진 조치다.

그러나 법무부가 2013년과 2017년 남매의 부모에게 ‘국적법에 따른 인지(신고)에 의한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으나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2017년에 모친이 귀화했으나 그때도 부모는 자녀들의 국적 취득 절차는 밟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에 2019년 10월 A씨 남매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남매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남매는 1심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고 상고해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행정청의 ‘공적인 견해 표명’이 있었고 남매는 이를 신뢰했다가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으며, 그 과정에서 남매의 과실은 없으므로 ‘신뢰 보호의 원칙’에 따라 국적을 줘야 한다고 봤다.

주민등록증 발급 등 행위가 국적이 있다는 공적 견해의 반복적 표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행정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남매가 국적 취득 절차를 따로 밟았을 것이라는 것이 대법원 지적이다.

대법원은 “미성년자일 때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신뢰를 부여하다가 성인이 되자 그에 반하는 처분이 이루어진 결과 갓 성인이 된 원고들은 더는 국적법에 따라 간편하게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또 부모가 충분한 안내를 받았음에도 자녀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부모 과실이지만 이를 미성년자였던 남매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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