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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월가브리핑]부쩍 폭등한 인플레, 고점론 불거진 증시

김정남 기자I 2021.07.14 12:02:36

미국 6월 CPI 예상밖 폭등…인플레 논쟁 점화
여행, 외식 물가↑…'일시적 상승' 힘받나 했더니
국채 30년물 입찰 부진서 나타난 '인플레 공포'
물가가 성장 짓누르나…스태그플레이션 경고도
위태로운 증시…인플레 부담에 장중 하락 반전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미국은 마스크를 거의 벗고 지내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착용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고요. 심지어 실내 가게의 종업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까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백신의 효과를 믿는 것입니다.

미국 방역정책은 이제 ‘통제’에서 ‘관리’로 돌아섰습니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 상징이지요.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반드시 백신을 맞으라”고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미국 내 18세 이상 성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자(2회 접종 기준·fully vaccinated)는 전체의 58.9%입니다. 최소 1회 접종자(at least one dose)는 67.7% 비중입니다.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건데, 바이든 대통령은 만족을 못하나 봅니다. 밖에 나가서 마음껏 경제 활동을 하되, 얼마든지 공짜로 놔줄 테니 백신을 맞고 하라는 겁니다.

(출처=미국 노동부)


미국 여행·외식·외출 물가 폭등

이날 오전 나온 미국 노동부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뜯어보면, 요즘 미국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6월 전체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했는데요. 그 중에서 눈에 확 띄는 몇몇 품목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여행 관련입니다. 가장 많이 오른 게 렌트카(car and truck rental)인데요. 1년새 무려 87.7% 폭등했습니다. 렌트카 가격을 평균 내보니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건데, 많이 오른 곳은 몇 배나 되는 곳이 허다합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최근 미국은 여름철 여행 수요 때문에 렌트카 예약이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숙박업소 가격은 1년 전보다 15.1%, 1개월 전보다 7.6% 뛰었습니다.

교통비가 폭등한 것도 여행 인파의 흔적입니다. 전체 대중교통비가 1년 전보다 17.3% 올랐는데요. 주요 대중교통으로 꼽히는 비행기와 배를 타는데 드는 가격이 각각 24.6%, 11.8% 올랐습니다.

두 번째는 외식과 외출 관련입니다. 여행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제한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limited service meals and snacks)의 경우 물가가 6.2% 올랐습니다. 그 대신 집에서 먹는 시리얼·빵류(0.2%), 고기·생선·계란류(0.6%), 유제품류(0.8%) 등의 가격은 0%대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여성의류(5.3%), 신발류(6.5%), 보석·시계(11.2%), 스포츠용품(7.5%) 등은 외출이 늘어난데 따른 지출의 결과입니다.

세 번째는 에너지 관련입니다. 6월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무려 45.1% 급등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갤런당 2달러 안팎이면 자동차 주유소에서 기름(레귤러 기준)을 넣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3달러를 훌쩍 넘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여행, 외식, 외출이 늘었다는 건 운전이 잦아졌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땅이 넓어서 차가 곧 발입니다. 수요 측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공급 요인이 있습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5.25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적절한 유가 수준을 가리키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넘어섰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 내부에서 증산을 둘러싼 이견이 있는 게 그 원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OPEC+ 내분에 개입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유가의 향방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출처=구글)


‘인플레 공포’ 방증한 30년물 입찰

어떠신가요. 이날 월가에서는 CPI 결과가 나오자마자, 인플레이션 논쟁이 분분했습니다. CPI가 나온 시각이 이날 오전 8시30분입니다. 1시간 후 증시가 개장했는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예상과 달리 장 초반 상승했습니다. 여행, 외식, 외출 관련 물가가 정점을 찍었고, 여름철이 지나면서 관련 수요가 점차 완화할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해리스 파이낸셜그룹의 제이미 콕스 매니징 파트너는 CPI 상승률 폭등을 두고 “6월 인상분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중고차 가격 급등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가 상승 일시적 관측→장기국채금리 하향 안정화→뉴욕 증시 주요 지수 상승의 흐름이었지요.

상황이 바뀐 건 오후 1시였는데요. 24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30년물 입찰이 예상과 달리 부진했습니다. 응찰률은 전월보다 낮은 2.19배에 그쳤고요. 낙찰금리는 직전 금리인 1.976%보다 높은 2.000%로 확정됐습니다(국채 가격 하락). 예상보다 국채를 사려는 수요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날 오후 뉴욕채권시장 분위기는 약세로 돌변했고요. 금리가 뛰자 증시까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월가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CPI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5.4%까지 치솟은 헤드라인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목표치(2.0%)보다 3.4%포인트 높은 수치 자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연준이 긴축에 나서면 국채가격이 더 싸질 가능성이 있는데, 미리 사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자 개인적으로는 여행, 외식, 외출 등의 물가 상승세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다수는 전월 대비 가격 상승률 역시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에너지 가격은 전적으로 OPEC+의 합의에 달려 있는 만큼 추가 상승 압력이 충분합니다. 이미 일각에서는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대까지 간다는 전망이 있지요.

요즘 월가에서는 올해 2분기 성장 고점론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준의 긴축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견해는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올해 안에는 테이퍼링(채권 매입 속도) 윤곽이 나올 것이라는데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테이퍼링을 개시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고 했고요.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CNBC에 나와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테이퍼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연준의 스탠스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발언들입니다.

(출처=더힐)


일각서 불거지는 뉴욕증시 고점론

일부 인사들은 더 나아가 물가 급등이 성장을 짓누르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쇼크는 없겠지만, 예상 외로 올해 하반기 성장 둔화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연준이 마냥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함의가 들어 있는 지적입니다. 근래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불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 지적이 조금씩 나오는 배경입니다.

데스몬드 래크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더힐 기고를 통해 “1970년대와는 다른 이유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극도로 완화적인 통화·재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이 와중에 공급망 차질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할 경우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연준부터 고통스럽지만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겁니다.

최대 관심사는 증시 향방이겠지요. 이날 오후 S&P 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갑자기 하락 쪽으로 방향을 튼 건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기자는 국채 입찰 하나에 주가 흐름이 바뀐 게 꽤 이례적으로 보였습니다. 현재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역대 최고입니다. ‘고점론’이 불거질 정도이지요. 당분간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을 주시하면서, 보수적으로 접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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