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주민 만난 아베 "韓 강제 징용은 중상모략"

김보겸 기자I 2020.10.23 14:20:34

아베 전 총리 군함도 징용 "근거없는 비방" 주장
야스쿠니 신사 두차례 참배하고 군함도까지
우익 역사관 드러내 보수 지지층 결집 시도

지난달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직에서 물러난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군함도(端島·하시마) 전 주민들을 만나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이 이뤄졌다는 한국 정부의 지적을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주장했다. 직을 내려놓은 후 “의원으로서 스가 정권을 지지하겠다”던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한 달 사이 야스쿠니 신사를 두 차례 참배한 데 이어 군함도 강제노역이 없었다며 왜곡 주장을 이어가자 일본 내에서는 자민당 주요 지지층인 보수·우익층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22일 일제강점기 수백 명의 조선인이 강제노역을 하다 목숨을 잃은 군함도 등 자료를 전시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방문했다고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센터는 군함도 탄광이 일본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증언과 자료를 선별적으로 전시한 곳으로 올 6월 개관했다.

아베 전 총리는 군함도 전 주민들을 만나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이유 없는 중상(모략)은 반드시 되받아쳐야 한다”며 “일본의 강력한 산업화 행보를 전해야 한다”고 주민들에 당부했다. 군함도에서 조선인 징용공이 임금 차별과 착취에 시달렸다는 한국 측 주장을 근거 없는 억측이라 깎아내린 것이다.

그는 또 대만인 징용공의 월급 봉투를 보며 “역사의 진실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음으로써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한 대만 징용공이 급여를 현금으로 받았다고 증언하는 내용과 함께 월급 봉투가 전시돼 있다. 군함도에서 강제 노동이 없었고 월급도 제대로 지급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전시 자료와 달리 센터 입구에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의 발언이 소개돼 있다. 지난 2015년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 하자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을 정당화한다며 반발했고, 이에 일본 측이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개관한 센터에는 군함도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증언과 자료만 전시해 두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같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차별이 없었다”는 등 군함도 전 주민들의 증언 형식을 통해 강제징용 사실을 정당화하는 장소로 만든 것이다. 센터장은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의 처형인 가토 고코가 맡고 있다.

아베 총리는 퇴임 후 우익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도쿄 한 호텔에서 열린 호소다파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의원의 한명으로서 확실하게 스가 정권을 떠받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한 지 사흘 만에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의 혼령을 함께 제사지내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지난 19일 다시 신사를 찾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식민 침탈과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상징적 시설로, 아베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기소됐다 석방돼 1957년에서 1960년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퇴임 후에도 일본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 전 총리가 우익 행보를 이어가는 데에는 수정주의 우익 역사관을 일본 사회에 확산하고 집권 자민당의 주요 지지층을 다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함도 앞에서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AFP)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