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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참패’ 맞은 아베, 앞으론 어떻게 되나

김형욱 기자I 2017.07.03 10:58:38

올 최대 이벤트 도쿄도의원 선거 유리코에 참패
‘전쟁능력 회복’ 개헌 추진동력 사실상 잃어버려
장기 집권은커녕 내년 9월 임기 보장도 어려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도의회 선거가 열린 지난 2일 굳은 표정으로 관저를 들어서고 있다.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장기 집권을 꿈꿨던 아베 신조(安部晋三) 일본 총리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 2일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역사적 참패’를 맞았기 때문이다.

아베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이날 선거 결과 전체 127석 중 2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직전 57석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자민당의 도쿄도의회 내 역대 최소 의석이던 38석(2009년)에도 크게 못 미쳤다. 경쟁자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와 공명당 연합은 79석으로 과반(64석)을 훌쩍 뛰어넘었다. 단순한 지역 선거 패배가 아니다. 도쿄도의원 선거는 전례 상 그 결과에 따라 총리나 정권 교체로 이어져 왔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아베 1강’ 체제가 갈림길에 섰다고 평가했다.

◇충격 빠진 자민당 “역사적 대패”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충격에 빠졌다. NHK는 자민당이 내부적인 충격에 빠졌으며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독주 체제에 대한 야당의 공세도 한층 거세지리라 전망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2일 밤 당본부에서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일 것”이라며 “앞으로 당의 세력 회복에 전력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간사장대행도 “예상 이상의 엄청난 역풍이 불었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불리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지방창생상은 “역사적인 대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민퍼스트회가 이긴 게 아니라 우리가 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각 개편의 시기나 내용이 앞으로의 정권 운영의 키를 쥘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성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여당으로서의 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첫 선거 패배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한 이래 연전연승해왔다. 아베가 집권한 4년여 동안 자민당은 중·참의원 선거에서 4연승을 달렸다. 아베 총리의 당내 위상도 그만큼 컸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베의 지지율은 이번 선거를 앞둔 지난달 49%(닛케이)로 전달보다 7%포인트 빠졌다. 이달 1~2일 지지율도 아사히신문 기준 38%로 전월 41%에서 추가 하락했다. 더욱이 2015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반대율(42%) 지지율을 앞섰다. 핑곗거리도 없었다. 아베 총리 본인이 직접 연루된 사학재단과의 유착 의혹이 잇따라 터졌다. 보수적인 일본 국민도 대부분 아베 총리의 변명을 믿지 않았다. 측근의 실언도 잇따랐다. 선거 직전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정치 중립 의무가 있는 자위대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패배의 충격을 줄이고 국정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각 개편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8~9월로 예정됐던 개각이 이르면 이달 중 추진될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망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일 자신이 이끄는 ‘도민퍼스트회’와 그를 지지하는 공명당이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는 결과를 확인한 후 기뻐하고 있다. AFP


◇개헌 물 건너가…조기 실각 가능성도

아베 총리가 어떻게 대처하더라도 궁지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생의 과제로 추진해 온 개헌은커녕 현 정권 유지도 버겁게 됐다. 아베 총리는 1945년 종전 후 쓰인 헌법 개정을 정치적 숙원으로 삼아 왔다. 주변국으로서 일본 개헌 추진안의 핵심은 일본 헌법 9조의 ‘전쟁, 전력을 포기’ 조항의 삭제다. 군국화를 막을 제동장치를 없애고 자위대의 활동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그는 2020년까지 신헌법을 제정한다는 목표로 내년 12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중의원을 조기 해산하고 내년 중 선거를 통해 중·참 양의원 의석수를 모두 3분의 2 이상 확보하려 했다. 4년여 임기 동안 지지율 50% 이상을 유지해 온 그에게 전혀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타격을 입은 자민당은 3분의 2 의석 확보는커녕 중앙 의회 선거에서의 참패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조기 선거라는 승부수에서 자칫 패배한다면 내년 9월까지의 총리 임기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이번 선거에서 대약진한 것도 아베로선 악재다. 고이케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도쿄도는 물론 중앙 정계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세력이 커지고 있다. 고이케 세력이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면 아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기 총선거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고이케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줄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현 분위기라면 아베의 자민당은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는커녕 참패 끝에 총리가 퇴진하는 걸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기더라도 가까스로 정권을 연장하는 수준이다. 올 3월만 해도 자민당 총재 임기를 6년에서 9년으로 연장하며 장기 집권을 꿈꿨던 아베 몰락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아베 총리는 3일 총리관저에서 “도쿄도민께서 크고 엄중한 심판을 내려주셨다”며 “우리 당에 대한 엄중한 질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체돼선 안 될 것”이라며 “반성할 건 반성하고 할 일은 해 가며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그의 측근인 이나다 도모미(왼쪽) 방위상과 도열한 자위대의 앞을 지나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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