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한파 취객 방치' 유죄 판결 나오자…"만취자 택시말고 경찰차 태워라"

채나연 기자I 2024.01.16 11:15:57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최근 한파 속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집 앞 야외 계단까지 데려다 준 뒤 방치해 숨지게 한 경찰관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자 경찰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사진=뉴시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최근 각각 벌금 500만 원과 4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주취자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해 술에 취한 60대 남성 A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앞까지 데려다 줬지만,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야외 계단에 앉혀 놓고 돌아갔다. 결국 A씨가 계단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지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이 같은 처벌과 관련해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법원이 일선 치안 현장의 고충과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판결을 내려 나쁜 판결의 선례를 남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경찰관은 “(이번 사건은)주취자를 다세대 주택까지 데리고 갔으나 정확한 호실을 몰라 대문 안 계단에 놓고 귀소했다. 통상적인 주취자 처리였다”면서 “경찰청은 말단 직원들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블라인드)
또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만취자 무조건 택시 말고 경찰차 태워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주취자, 다세대 주택까지 모셔다 줬는데 벌금형 판례 나와 이제 경찰들 발목이 묶였다”며 “(주최자를) 책임지지 못할 경우 (경찰관이) 벌금을 내는 판례 나온 거 있으니 안정보장된 순찰차를 이용해라” 등의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4조에 따르면 경찰은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는데, 이에 관한 규정이나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경찰은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세부화시켜 의식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의사능력이 없는 주취자는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기라 변경했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 부족으로 경찰관이 빈 병상을 찾아 나서게 돼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주취자 보호법 4건이 6개월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주취자 처벌법 1건은 2021년 4월 발의돼 3년 가까이 계류 상태다.

주취자 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경찰, 소방 당국, 지자체 및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를 보호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각 지자체에 주취자 구호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일부 담겼다.

이와 관련해 윤희근 경찰청장은 15일 전날 주재한 주간업무 회의에서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달라”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