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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②대한제국을 몰락시킨 숨은 원흉 '채권'

김무연 기자I 2020.10.26 11:00:00

지상 강의 ‘오늘의 원픽’ : ‘인더스토리Ⅱ’ 6강 채권(債券)
日, 화폐개혁과 차관도입으로 대한제국 경제권 장악
국채보상운동 무위로 돌아가면서 1910년 경술국치

메가타 다네타로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1905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5년 후인 1910년 일본에 병탄되는 경술국치란 비극을 맞이했다. 하지만 일본이 을사늑약에서 경술국치에 이르는 5년간 어떤 식으로 대한제국이 무너졌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은 그 5년 동안 대한제국의 경제력을 철저히 마비시키는데, 그 주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바로 채권이다.

일본은 1904년 체결한 제1차 한일협약을 근거로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 種大郞)라는 인물을 대한제국에 재정고문으로 파견한다. 그는 부임 직후 당시 조선에서 통용되던 백동화를 일본 화폐로 바꾸는 화폐 정리 사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화폐 개혁을 교환 마감일 3일 전에 일반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교환도 액면가가 아니라 백동화의 질에 따라 차등을 둬 교환해줬다. 새로운 화폐로 교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대다수 백성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게 됐고, 사실상 우리 민족의 상업 자본은 몰락했다.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일본은 채권 발행을 통해 경제 침탈을 가속화 했다. 메가타는 세수 부족과 민간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대한제국에 국고증권채, 금융자금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대한제국이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일본 정부가 사들였다. 결국 대한제국은 일본의 압박으로, 일본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김광제와 서상돈의 기고문
대한제국이 일본으로부터 끌어들인 차관 총액은 당시 돈으로 1300만원에 달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1조원이 넘는 돈이다. 이렇게 도입한 차관은 사실상 통감부가 식민 지배 사업을 수행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 통분을 금치 못한 대구의 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은 대한매일신보에 백성이 나랏빚을 갚아주자는 기고문을 실었다.

두 사람의 기고문은 조선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이었던 양기탁과 어니스트 베델을 주축으로 전국 각지에서 국채를 갚기 위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게 되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운동의 핵심인 양기탁과 어니스트 베델을 국채 보상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긴다. 2년간의 재판으로 이들은 혐의는 무죄로 밝혀졌지만 그 과정에서 국채보상운동은 와해할 수 밖에 없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한지 2년 후인 190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임규태 박사는 “채권은 강대국이 약소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지배하에 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채권으로 한 나라의 주권이 좌우되었던 것은 대한제국만의 비극이 아니며,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채권을 이용한 지배권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나아가 채권은 국가와 국가 간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 등 권력 구조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 박사는 “채권이 곧 권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Ⅱ’ 채권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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