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차기 대권 호남에 있다"…김종인의 이유 있는 호남행

송주오 기자I 2020.11.02 11:00:30

김종인 위원장, 영남 대비 호남 방문 4배
민주당 앞서 수해현장 찾아 지역민 위로
5·18 묘지서 무릎 꿇고 참배하며 참회…지역발전도 앞장서
서진전략, 호남 유권자 통해 수도권·중도권 표심 겨냥
호남향우회 과거 보수 후보 지지한 전례도 있어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4 대 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이후 호남과 영남을 각각 방문한 횟수다. 호남 방문 횟수가 영남 방문의 4배에 이른다. 호남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정계에서는 ‘서진(西進)전략’이라고 부른다.

국민의힘은 지난 4·15 총선 당시 호남에서 의석을 1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영남에서 7명의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것과 대비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호남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며 전국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다수 의원을 배출하며 전국 정당에서 ‘영남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김 위원장이 서진전략을 펼치는 배경이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위로→참회→지역발전…김 위원장의 ‘빅픽처’

김 위원장은 지난 8월 10일 전남 구례 수해현장을 방문하면서 서진전략의 서막을 알렸다. 호남 지역을 싹쓸이한 민주당보다도 한발 앞선 행보였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에 ‘역시 정치 9단’이란 말이 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을 돌며 서진전략에 힘을 보탰다. 수재민들의 아픔을 선제적으로 보듬은 국민의힘의 행동력은 소기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처음으로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을 앞지른 것.

김 위원장은 8월 다시 한 번 호남을 찾았다. 이번에는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였다. 앞서 수재민의 아픔을 위로했던 김 위원장은 이번에 호남 지역민들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방문했다. 그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사유야 어떻든 간에 그(전두환 전 대통령)와 같이 정권을 쟁취한 데 참여했던 데 대해, 광주의 상황을 보니 제가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면서 “거룩한 이분들의 뜻을 받들어 보다 많은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보수정당의 수장으로서 호남 지역민들에게 참회하는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위로와 참회에 이어 지역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당리당략을 떠나 낙후된 호남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 29일 전북도청을 방문해 가진 ‘정책협의’에서 “우리 당은 호남권 예산정책협의를 개최에 48명의 호남동행 국회의원단 발족, 호남발전기금 조성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새만금이 직면한 각종 현안과 전북이 미래형 일자리 산업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앞에서 열린 호남동행국회의원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재보선·대선 밑그림 위한 포석

김 위원장의 서진전략은 호남을 넘어 수도권, 중도층을 겨냥하고 있다. 수도권의 표심은 호남의 영향을 받는다. 수도권 인구 중 호남 출신은 상당수를 차지한다. 김 위원장도 이런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4일 국민통합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서울 인구 구성을 보면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역시 호남 지역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25개 구청장 중 절반인 13곳에서 호남 출신 구청장이 탄생했다.

호남 품기는 김 위원장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이미지 쇄신에도 영향을 끼친다. 국민의힘은 ‘보수정당’ 이미지에 갇혀 한계에 봉착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올해 총선에서 연전연패한 국민의힘의 상황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념을 넘어선 정당으로의 이미지가 부각된다면 합리성을 앞세워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호남향우회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호남향우회는 지역 향우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조직력도 막강하다. 20대 국회에서 호남 지역을 싹쓸이 한 정당은 국민의당이었다. 호남의 맹주인 민주당은 참패했다. 호남향우회 소속 임원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며 불만을 드러낸 것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호남 끌어안기로 호남향우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내년 재·보궐은 물론 대통령 선거까지 여당과 겨뤄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호남향우회 중 일부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전례도 있다.

한편, 김 위원장의 뿌리는 호남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으로 전북 순창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은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가와 농민, 노동자를 위해 변론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좌우를 포용하고 독재 정치를 비판한 법조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2010년 대법원은 그의 호를 딴 ‘가인연수관’을 순창에 개관하기도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사진=연합뉴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