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떨고 있니’…공무원 사회 뒤덮은 이해충돌 방지 위반

김기덕 기자I 2021.05.13 11:00:15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앞두고 ‘초긴장’
한남뉴타운 관련 서울시 고위자·구청장 등 고발
“노후에 실거주 목적 구입…내부 정보 이용없어”
무주택자도 날벼락…“제도 세분화해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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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00동에 사는 7급 공무원 김보연(가명)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결혼 후 6년 동안 전세로 살았는데 자녀가 점차 커가면서 집이 좁아져 현 거주지 근처로 실거주할 집을 사려고 계획 중이다.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투기 사태로 공무원 사회에 ‘부동산 투기 주의보’가 발령되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평소 매입을 고민하던 빌라가 공공재개발 사업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주변 동료들이 이를 만류하고 있어서다. 김씨는 내부정보 의혹도 아닌데다 투기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집을 사는 게 영 찜찜해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 이후 공무원 사회에 ‘부동산 매입 금지령’이 떨어졌다.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내년 5월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실거주할 집을 사는 것조차 망설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과도한 주택시장 규제로 인해 무주택자인 공직자들에게까지 무분별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한남뉴타운 재개발 ‘태풍의 눈’…고발 등 잇따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이 심의·의결됐다. ‘제2의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이 법에 따라 내년 5월부터 공직자가 직무상 비밀이나 소속 공공기관의 미공개 정보로 재산상 이익을 취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제3자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벌금은 최대 7000만 원으로 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본격적인 법 시행에 앞서 연내 시행령 제정을 완료할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 서울시당은 지난 4일 서울시 고위 공무원인 A씨를 이해충돌 의무 위반에 따른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찰에 고발 조치했다. 서울시 1급 공무원인 A씨가 2017년 당시 한남뉴타운 3구역 재개발 사업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결제권자였는데 해당 구역 결제가 이뤄진 직후 토지와 건물을 사들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정의당 서울시당, 권수정 서울시의원 등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이해충돌 위반, 부동산 투기의혹 수사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재민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임한 후 인사발령을 낸 시 주요 간부가 개발 관련 법적 기준 완성 단계인 토지이용계획이 확정되는 시점에 해당 구역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며 “이해충돌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에 외부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 시 주요 공직자는 물론 25개 자치구 구청장까지 포함해 부동산 투기 관련 전수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한남3구역은 서울 재개발사업장 중에서도 명실상부 최고의 입지로 손꼽히는 노른자 땅이다. 이미 2003년 한남뉴타운 지구로 지정돼 개발논의가 시작됐지만 정비계획이나 건축계획 등이 수차례 변경되며 20년 가까이 되도록 재개발사업이 지연돼 왔다. 이미 해당 공무원 A씨에 대해 2년 전에도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의혹 관련 고발이 있었지만 서울시의회와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A씨가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을 역임했던 2017년 당시 결제 직후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해당 부동산을 매입했는지 여부다. 환경영향평가는 재개발 등 정비사업 단계의 8부 능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시행인가 이전에 이뤄진다.

해당 공무원 A씨는 “해당 재개발사업장이 있는 용산구가 주관해 환경영향평가안을 만든 후 한달 간 열람공고 기간 동안 일반시민은 물론 공공기관, 전문가 의견을 취합한다. 당시 서울시 환경평가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을 받아서 용산구에 의견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면서 “정부가 이를 최종 결정하고 통과된 날짜도 2018년 9월인데 어떤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주택자로서 전세를 살고 있는 상황에서 완공시 노후에 실거주할 목적으로 집을 구매한 것”이라며 “내부 정보나 어떤 특혜가 있었다면 성실히 경찰 조사를 받아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풀겠다”고 말했다.

용산구 한남뉴타운 재개발사업지 전경.


미공개 내부정보 이용이 관건…“기+준 세밀화해야”

한남뉴타운 재개발 사업장과 관련한 투기 의혹 사례는 또 있다. 과거 2015년 7월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두 아들과 함께 관내 보광동 한남4구역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것을 두고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며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 성 구청장이 해당 주택을 매매한 시점은 한남4구역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지 9년, 조합설립인가가 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지난해 11월 시민단체가 이 같은 사실을 고발했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 권익위는 “성 구청장이 사적 이해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공무원 행동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성 구청장은 “주택 매입 3년 후인 2018년 공무원 행동강령이 개정됨에 따라 사적 이해관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단순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노후를 대비해 사들인 것 뿐 어떤 이해관계나 권한을 가지고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는 해당 고발 건을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선출직이나 고위 공직자가 아닌 일선 공무원들도 불안에 떨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도심 내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매입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구청 한 관계자는 “이미 지역 주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낡은 저층 주거지인데다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고 했는데 내부 정보로 엮일 수도 있으니 해당 주택과에서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다”며 “2·4 부동산 공급대책으로 집을 산 곳이 추후에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 우선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을 해야 하는데 무주택자에게는 사실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직자가 개발 계획부터 보상까지 아우르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집을 매입했다면 일벌백계를 해야겠지만 개발지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개발 단계에서 얼마나 참여했는지, 내부정보를 얼마나 이용했는지를 구분할 수 있게 제도를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한 역세권 공공주택지구 공사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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