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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원의 촉]역선택 논란, 표본수 늘리고 여론조사 비중 낮추면 해결 가능

선상원 기자I 2021.09.03 12:08:52

국힘 여론조사 비중 커지면서 민주당 지지자 역선택 부상
윤석열 최재형 역선택 방지 찬성, 홍준표 유승민 등 반대
그간 여야 모두 국민참여경선 도입, 역선택 방지조항 없어
방지조항 실효성 낮고 조사 문항 한계, 대안 찾는 게 합리적

발언하는 국민의힘 정홍원 선관위원장 (서울=연합뉴스)진성철 기자 = 국민의힘 정홍원 대선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관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흔들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역선택 방지조항을 둘러싸고 사생결단식 대결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일 각 캠프 관계자들을 불러 경선 룰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기존에 밝혀온 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황교안 전 대표 등 3개 캠프는 국민여론조사시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홍준표 의원과 하태경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8개 캠프는 재차 반대 의견을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1~2차 예비경선을 거쳐 4명의 후보를 추린 뒤 본경선을 거쳐 11월 9일에 최종 대선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1차 예비경선은 100% 국민여론조사로, 2차 예비경선은 선거인단 30%, 여론조사 70%, 본경선은 선거인단 50%, 여론조사 50%를 반영하고 여론조사시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 최고위원회의 추인을 받은 경선안이지만,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은 “경준위 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재검토 의지를 분명히했다. 역선택은 말 그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상대하기 쉬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해 조사 결과를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여야 정당들은 당대표 선출 등 당직 선거에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해 상대 정당 지지자를 제외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반영해왔다. 다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 등 공직 선거에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았다. 확장성에 기반한 당선 가능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상대 정당 지지자도 여론조사나 선거인단 모집에 포함시켰다.

지난 경선 때 국민의힘 당원 비중 50~70% 달해… 역선택 가능성 인구 1.5%

지난 2002년 한국 정치사상 맨 처음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했던 민주당은 예비경선을 제외하고는 본경선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한 적이 없다. 민주당은 당원이든 일반국민이든 수백만명이 선거인단에 참여해 1인 1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본경선에 상대 정당 지지자를 배제시킨 경우가 없다.

다만 2007년과 2012년, 이번 대선 예비경선의 국민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어 조사 대상을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층으로 한정했다. 민주당은 당원 50%, 국민여론조사 50%를 합산해 본경선에서 겨룰 후보를 정해왔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도 2002년부터 대의원들만 참여해 선출했던 대선후보 선출 방식을 바꿨다.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국민선거인단을 넣거나 여론조사를 도입했다.

지난 2002년 50%를 반영한 국민선거인단의 투표율이 낮자 2007년부터 선거인단의 비율을 30%로 줄이는 대신 여론조사를 20% 반영하기 시작했고 2012년 대선 경선 때에도 여론조사 20%를 넣어 후보를 선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2017년 대선 경선 당시에는 선거인단을 없애고 예비경선과 본경선에 여론조사를 각각 30%, 50%씩 반영했다.

대의원과 당원들의 반영비율이 50~7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해 여론조사에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민심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경선 방식들을 도입해왔지만, 역선택 방지 문제가 이번처럼 크게 논란이 된 경우는 없었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하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당 선관위에서 중재안으로 정권교체에 찬성하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거짓말로 정권교체에 찬성한다고 하고 참여하는 민주당 지지자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촘촘히 넣는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피해 갈 수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 여론조사를 기다려 맘먹고 역선택을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열성적인 민주당 권리당원이면 모를까, 일반 지지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역선택을 하는 비율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 권리당원은 80만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1.54%에 불과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선택을 막을 수 있다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거짓말로 답변하는 사람을 걸러낼 수는 없다. 제도의 장단점을 보고 장점이 더 많으면 하는 것”이라며 “더욱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국민여론조사인데 국민의힘 지지자만 가지고 하는 것은 명분에도 맞지 않다. 막을 수 없는 역선택을 가지고 싸울 게 아니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국민의힘 유승민 대선 예비주자가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경선 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야 정당과 무당파 떠도는 유권자 많아… 표본수 1만개 여론조사 비중 30~50%로

여론조사 문항의 한계도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들은 정당 지지도를 조사할 때,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고 물어본 후 답변이 없으면 ‘어느 정당에게 조금이라도 더 호감이 가는 편이냐’고 재차 질문해 답변을 얻는다. 두 문장을 묶어 질문하기도 하는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자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지지자까지 합산해 정당 지지도를 산출한다.

문제는 이런 소극적인 지지자들은 정국 상황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무당파층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방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변한 무당파층이 면접원에 의한 조사에서는 30%, ARS 조사에는 10% 정도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소극적 지지자까지 포함하면 무당파층이 40~50%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당파층을 선거 때마다 존재하는 스윙보터, 부동층으로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선거의 승부는 이들에 의해 갈린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57.5%의 득표율을 올렸는데, 국민의힘 지지자 뿐만 아니라 이런 부동층이 가세한 결과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정당의 뿌리가 약하다. 국민 중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정당에 대한 지지강도가 약하다”며 “국민의힘을 지지했다가 상황에 따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대통령감으로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정당 지지자를 조사에서 제외하면 잠재적 지지자를 제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놓고 논란을 벌일 게 아니라, 여론조사의 표본 수를 늘려 오차를 줄이거나 여론조사의 비중을 줄이는 것을 논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통 여론조사기관이 하는 것처럼 표본수를 1000개로 하면 오차가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로 최대 6.2%포인트까지 난다. 이를 5천개, 1만개로 늘리면 역선택 가능성을 줄이고 오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니면 지난 2007년과 2012년, 2017년 대선 경선처럼 여론조사 비중을 20~50%로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 경선 룰은 1차 예비경선은 100%, 2차 예비경선 때는 70%, 본경선에는 50%를 반영하게 되어 있는데, 예비경선도 본경선처럼 50%로 줄이거나 2017년 예비경선처럼 30%만 반영하면 역선택 가능성을 줄이면서도 국민참여경선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신 교수는 “여론조사든 선거인단이든 모두 역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표본수나 참가자를 늘리면 물타기가 된다. 정부 여론조사처럼 표본수를 1만개 정도 하면 역선택을 줄이고 오차를 줄여 논란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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