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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점서 '삥술'로 취하게 한 후 요금 과청구…2심서 대폭 감형

하상렬 기자I 2020.08.17 15:07:55

‘삐끼’로 손님 유인하고 가짜양주 먹여
만취상태 만들어 정품양주 값 결제
1심 징역 ‘5년2월’→2심 ‘2년6월’ 감형
法 “강도 혐의 입증 불충분, 특수강도 아닌 사기”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늦은 밤 취객에게 “싸게 아가씨하고 놀 수 있는 술집이 있으니 가자”며 호객행위를 해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여성 접대부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삥술’(저가 양주와 손님들이 먹다 남은 양주를 섞어 새것처럼 만든 양주)을 급하게 먹여 만취하게 만들고, 마치 정품양주를 마신 것처럼 술값을 과다 청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당이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특수강도죄로 징역 5년 2월 등 중형을 선고받았던 이들은 항소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강도혐의가 무죄로 판단돼 징역 2년 6월 등으로 대폭 감형됐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는 특수강도 등 혐의로 기소된 유흥주점 업주 김모(44)씨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무 최모(31)씨에겐 징역 1년 6월에 벌금 200만원, 지배인 김모(48)씨에겐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김씨는 직원들과 함께 취객을 상대로 가짜양주를 먹여 만취하게 한 이후 ‘덤터기’를 씌우는 방식으로 돈을 강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은 2019년 1월 혼자 걸어가는 취객인 피해자를 발견, 호객행위를 해 데리고 와 방으로 안내한 다음 요금 일부를 현금으로 선결제 해야만 한다며 카드를 받아냈다. 비밀번호를 알아낸 이들은 여성 접대부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사전에 제조한 ‘삥술’을 급하게 마시도록 해 사리분별이 어려워질 정도로 만취하게 한 다음, 마치 정품양주를 마신 것처럼 속여 신용카드로 196만원을 결제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를 비롯해 이들은 2017년 12월 초부터 2019년 2월 22일까지 20회에 걸쳐 피해자가 취하면 테이블에 피해자가 먹지 않은 술병을 올려두는 등 피해자를 속이고 술값 등 명목으로 피해자로부터 금품을 편취하거나 편취미수에 그치는 등 총 21차례 39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 조사를 따르면 이들은 피해자의 지갑과 휴대전화를 꺼내 직업 등 인적사항을 토대로 ‘사이즈’(결제 가능한 술값)를 결정하고 유흥주점 인근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유흥주점에 설치된 카드 단말기로 술값 등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업주 김씨는 매일 영업 마감시간에 텔레그램이나 전화를 통해 최씨와 지배인 김씨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편취한 술값을 웨이터·여성접대부·삐끼들과 정해진 비율로 배분했다.

法 “의도적 만취는 폭행, 강도죄”→“술 먹인 증거 없어, 사기죄”

1심은 “피고인들의 행위는 피해자들을 혼취상태에 빠뜨려 그 신용카드 등을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할 의사가 있었다”며 “객관적으로 사람이 마시면 혼취상태에 빠질 수 있는 정도의 주류를 연속하여 마시게 해 피해자들을 항거 불능의 혼취상태에 빠뜨린 것으로 이는 특수강도죄에서 폭행에 해당한다”고 판단, 업주 김씨에게 징역 5년 2월을 선고했다. 이어 최씨와 지배인 김씨에겐 각각 징역 4년 2월과 4년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즉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술을 마셨기 때문에 강도죄에서 정한 폭행이나 협박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항소했고, 2심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유죄로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운을 떼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이 강도의 고의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피해자들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는 진술이 반영된 것.

이어 “피고인들은 공모해 피해자들이 술에 취한 상태임을 이용해 삥술을 진짜 술로 속여 마시게 해 술값을 실제 가격보다 높여 받거나 주문하지 않은 술을 주문한 것처럼 속이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여 술값 등을 과다하게 청구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하면서 사기죄로 판시했다.

아울러 “다른 손님이 마시고 남은 술을 이용해 제조한 삥술을 사용하는 등 국민보건상 매우 유해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특히 대부분 피해자들은 삥술을 마시고 당일 있었던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해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중대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도 있어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고, 피해자들이 엄벌을 촉구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업주 김씨는 법원 판단에 불복, 상고장을 제출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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