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첫 '국가안보전략' 발표…"중국과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독일이 사상 처음으로 공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공급망 등을 완전히 분리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공급망 재편 수준의 ‘디리스킹(위험완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4일(현지시간)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고 있다.(사진=AFP)

14일(현지시간) 독일 DW방송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이날 중장기 안보 구상을 담은 ‘국가안보전략’을 공개했다. 독일 정부가 외교·국방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안보 전략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중국의 팽창주의 등으로 대외 불안정성이 가중되자 국가안보전략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모든 수단과 도구를 사용해 외부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보호해야 한다”며 “안보 없이는 자유도, 안전도, 번영도 없다”고 말했다.

독일 국가안보전략은 △능동적이고 강력한 국방력 △경쟁국의 경제·사이버 위협에 대한 탄력적 대응 △기후변화나 에너지·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 가능성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앞으로 경제 정책을 결정할 때도 (전보다) 안보를 더 많이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논의되던 국가안보회의(NSC) 설치는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제외됐다. 권한 약화를 우려한 외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눈에 띄는 건 중국 관련 기조다. 독일 정부는 중국을 ‘체제 경쟁자’라고 표현했다. 이어 “중국이 반복적으로 독일의 국익과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규칙에 기반한 기존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으며 점점 공격적으로 역내 패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 없이는 국제적 난제와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며 중국을 ‘파트너’라고도 표현했다. 국가안보전략 초안에선 대만과 협력 확대를 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최종안에선 제외됐다.

국가안보전략 내 중국 관련 내용을 두고 독일 연립정부 안에서도 이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숄츠 총리 등은 상대적으로 중국에 온건한 반면 베어보크 장관 등은 강경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다음 달 상세한 ‘대(對)중국 전략’을 별도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날 숄츠 총리는 “독일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고 디리스킹을 원한다”고 대중 정책을 설명했다. 공급망 등을 중국과 완전히 분리하는 디커플링에 비해 공급망 재편 수준의 디리스킹은 대중 견제의 수위가 온건하다고 볼 수 있다. 숄츠 총리는 이달 20일 독일을 찾는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할 계획이다.

이 같은 모호성을 두고 일각에선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하원의원은 중국과의 무역·투자 감소가 독일이 당면한 중대 과정이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경제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구상이나 나토 확대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안보전략에 한 마디도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