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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밥그릇 지키기 VS 독단적인 의료정책

e뉴스팀 기자I 2020.09.03 08:43:18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정부와 의료계 충돌로 어수선하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일상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들 눈에는 이건 또 뭔가 싶다. 정부와 의료계는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정부는 의사고시를 9월 8일로 1주일 연기했다. 국시 거부자가 90%에 달하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강행할 경우 내년 3,000여명에 달하는 신규 의사 공백이란 현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일주일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만약,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부와 의료계 모두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차질이 불가피하고, 의료계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번 사태로 한 명도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의료인들이 희생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며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교수들까지 나선 마당에 강경 기조를 고수할 경우 불신만 키운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후 정부가 약속한 협의체와 국회가 제안한 협의기구를 통해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며 조속한 복귀를 촉구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문서화를 요구하며 요지부동이다. 학생들 또한 국시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책 변화를 원한 것이지, 국시 1주일 연기는 아니다”면서 “정책 변화가 없는 이상 단체행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가 내세우는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공공 의료대학 설립, 의대 정원 확대, 첩약 급여화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협의와 설득이 실종된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자신들을 배제하고, 또 설득보다 강경 일변도로 압박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전공의 고발은 불씨가 됐다.

의전원 출신 한 전공의는 전화통화에서 “코로나19 와중에서 누구보다 헌신했던 게 의료인이다. 그런데 덜컥 고발했다. 응급 현장을 지켜온 의료인들이 갑자기 범죄자가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누가 응급실을 지키겠느냐”며 강경 대응을 비판했다. 김상걸 경북대 의대 교수회 의장도 “빌미를 제공한 건 정부다. 그런데 잘못된 정책을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예상됨에도 밀어붙이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그렇다하더라도 집단 휴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의료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환자 때문이다. 진료를 외면한다면 앞뒤가 바뀌었다. 의료계는 필수 의료에서는 차질을 빚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불편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또 팩트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계는 공공의대 설립 과정에서 의견 수렴절차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공청회나 토론회가 생략됐다는 것이다. 관련 법안은 박근혜 정부부터 논의돼 왔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서 급조했다는 주장부터 어긋난다. 또 아직은 법안 제정 단계라서 앞으로 얼마든지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있다. 게다가 일부러 공론 장을 외면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자체를 외면해 왔다는 내부 고발이 있다.

공공의대 학생 선발 기준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 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 어디에도 ‘시·도지사 추천으로 학생 선발’은 없다. 그런데도 마치 권력기관 자녀들을 입학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감성을 자극해 본말을 전도하려는 팩트 조작이다. 대한의사협회 협상 역량도 회의적이다. 학생들이 집단 휴학과 시험을 거부하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15년 동안 의대 정원 동결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인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급자 증가를 감안할 때 ‘밥그릇 지키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주일이다. 의료계는 열린 자세, 정부는 대화와 설득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정책 의도가 보편적 의료서비스 확충일망정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독선이다. 대화와 설득은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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