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그들이 은퇴 선언을 번복하는 이유

피용익 기자I 2020.07.18 18:18:18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어제 나는 은퇴했었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 눈물 흘렸었지. (중략) 슬픈 연극은 끝났어. 나를 보내야만 해. 너희들의 슬픔이면 나에게 힘이 돼. 기다림에 지칠 때면 다시 돌아올거야. 너희들의 눈앞으로.”

한국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가 1997년에 발표한 ‘은퇴선언’ 가사는 한 해 전에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를 비꼰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었다. 사실인지 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나, 적어도 당시 팬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서태지가 2000년에 솔로 앨범을 들고 컴백하자 이 노래는 다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뮤지션의 은퇴 선언과 번복은 흔한 일이다. 저스틴 비버, 가스 브룩스, 티나 터너, 오지 오스본 등도 은퇴 몇 년 후 아무렇지도 않게 컴백해 논란이 일었다. 롤링 스톤스는 하도 여러 번 은퇴를 번복해 이제 그들의 고별 공연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2014년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투어를 하지 않겠다는 ‘투어 종료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았던 머틀리 크루는 2021년 여름 데프 레퍼드, 포이즌과 함께 미국 내 스태디움을 순회하기로 했다. 머틀리 크루의 리더 니키 식스는 2014년 당시 “법적으로 우리는 다시는 (투어에서) 연주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지만, 2019년 동영상을 통해 계약서를 불태우는 장면을 보여주며 투어 재개를 알렸다.


더 이상의 월드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2년 만에 투어를 재개한 주다스 프리스트가 2011년 인터뷰에서 “거짓말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다수 뮤지션들은 별다른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활동을 다시 시작하거나, 은퇴 번복 이유를 물으면 “사랑하는 팬들이 기다려서” “보여줄 게 더 있어서” 등의 답변을 내놓는다.

뮤지션들이 무대 위에서의 삶을 잊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무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희열이다. 수년 간 이어진 투어에 지치고 더 이상의 창작에 어려움을 느껴 은퇴를 선언하지만, 마치 금단현상처럼 금세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뮤지션들이 은퇴를 번복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돈’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재산은 몇 년이면 바닥난다. 저작권료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셀레브레티의 소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네임 밸류를 활용해 사업을 하다 망해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디 스나이더는 2020년 기타 전문지 얼티미트 기타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션이 ‘은퇴한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말은 농담 같은 것”이라며 “(은퇴를 번복하는) 이유는 아티스트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주를 하지 않으면 직업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뮤지션의 은퇴 번복은 팬들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새 앨범을 들을 수 있고, 마지막인 줄 알았던 공연에 다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팬들은 많다. 반면, 이들의 은퇴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 오피셜 굿즈까지 구입한 팬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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