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임병식의 창과 방패]일본, 언제까지 이대로 놔둘 것인가

e뉴스팀 기자I 2020.09.17 07:23:41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1997년 12월 6일 런던정경대학에서 일본 관계 세미나가 열렸다. 125년 전 이와쿠라 사절단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예방을 기념한 세미나였다.<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73p>” 148년 전인 1871년 12월 23일, 일단의 무리들이 요코하마 항을 떠났다. 100여명으로 구성된 이와쿠라 외교사절단이다. 여기에는 외교 사절, 학생, 학자, 그리고 여성과 7살짜리 어린아이도 포함됐다. 겨울바람은 차갑고 비장했다.

이후 이들은 22개월 동안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며 20여 개 국을 누볐다. 목적은 메이지 정부를 알리고 앞선 문물과 제도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에는 무려 4개월이나 머물렀다. 사절단은 귀국하자마자 일본을 개혁했다. 외교, 군사, 교육, 정치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주도했다. 철도를 놓고, 대학을 설립하고, 조선소, 철강회사,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또 항공기와 함정, 대포 등 무기를 만들었다.

행정제도 개혁, 의무교육, 입헌군주제, 여성교육 제도화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떠나던 해, 조선은 개항을 요구하는 미 함대에 맞서다 강화도에서 박살났다(1871년·신미양요). 그리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한쪽은 세계로 나아갈 때 한쪽은 문을 닫아 걸은 것이다.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조선이 부모처럼 떠받든 중국을 깨뜨리고, 러시아제국마저 무너뜨렸다.

사절단이 귀국한(1873년) 뒤, 불과 20년만이다. 급기야 태평양 전쟁(1945년)에서는 조선을 비롯해 동남아시아를 집어 삼키고 미국을 상대로 맞장을 떴다. 역사상 이토록 짧은 기간에 국력을 키운 나라가 몇이나 될지 놀랍다. 이런 흐름은 일본 근대화, 현대화로 이어졌다. 1917년 설립한 이화학연구소는 대표적이다. 100여년 넘게 일본 기초과학을 다진 산실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 23명 배출됐다. 일본 산업의 뿌리는 이처럼 깊다.

선반, 밀링, 프레스, 표면처리, 열처리 등 기초소재 분야에서 일본 강소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가 주력으로 삼는 반도체, 휴대전화, TV, 자동차 산업은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현실이다. 다행히 지난해 경제 마찰을 계기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기술 독립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체인 망 속에 있는 세계경제 특성을 감안할 때 기술 독립이 마냥 최선은 아니다.

서로 잘하는 분야에 특화하는 게 남는 장사다. 비교우위 경제 이론이다. 그러니 감정적으로만 일본을 대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 이후 일본과 외교 관계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장기화될 경우 양국 모두 내상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는 치킨 게임을 중단하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일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마침, 변화 계기를 맞았다. 아베 내각이 막을 내리고 스가 요시히데가 새 총리로 선출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스가 신임 총리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일본 정부와 언제든지 마주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새 내각 출범을 계기로 일본의 국운이 상승하고, 한일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지난해 10월 스가 총리와 비공개로 만남을 상기시키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의지를 보였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 메시지는 적절했다는 평가가 있다.

외교에서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그러나 일본을 대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지배를 받은 탓이다. 일부 정치인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족감정을 자극해온 것도 갈등을 만들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에 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땅 덩어리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과 관계 개선은 문재인 정부에 중요한 현안이다. 감정적으로 화해하라는 게 아니다. 국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고 한다. 우리가 일본을 제대로 이기는 길도 이런 것이다. 잊지 않되, 넘어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에 맞먹는 안목과 역량이다. 목소리 높이고 핏대 올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사절단으로 다녀왔던 쓰다 우메코라는 여성은 훗날 쓰다주쿠 대학을 설립해 인재를 길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