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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장① "기본소득 이렇게"

이정훈 기자I 2020.10.24 10:24:29

`투명하게 쓰인다면 세금 더 낼 수 있다`, 엄청난 변화
중산층에 후한 국민연금 문제…기본소득과 개편 논의
선별복지는 기존 예산으로, 기본소득은 목적세 신설로
탄소세·토지세 등 검토 가능…청년 타깃도 의미 있어

[이데일리 이정훈 양지윤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급감하면서 당장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정책 실험으로 행해지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제정법안을 발의한데 이어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도 주요 정강정책 1호로 기본소득을 꼽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는 가장 발빠르게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정책 실험을 잇달아 하고 있거나 할 예정입니다. 경기도의 기본소득 정책을 의결하는 최고 결정기구인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에서 이재명 도지사와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한 주 전인 지난 13일 정동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진행한 강 공동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남훈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화두가 이렇게 일찍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었나요.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죠. 코로나19라는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가 전 국민들에게 지급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이슈가 가장 큰 변수였던 것 같습니다.

-복지 사각지대 문제는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건이 있을 때에만 반짝 관심을 받는 정도였죠. 았다. 말씀대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재난상황이 일상화되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듯 합니다.

△그렇죠.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확대 지급됐고 이로 인해 모든 국민들이 행복해했고 전반적으로 세금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많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언론에서 여론조사를 했더니 `1차 재난지원금을 받고 느낀 게 뭐냐`는 질문에 40% 이상의 국민이 `내 세금이 투명하게 쓰인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이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 엄청나다는 건가요.

△이는 사실상 `내가 낸 세금이 투명하게만 쓰인다는 믿음이 있으면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하는 것이고, 세금을 더 안 낸다면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없는 것이죠. 국방예산만 줄인다고 될 일도 아니구요. 납세자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해서 그 돈으로 기본소득을 해야 하는 겁니다. 현 재정여건에서 세금을 더 안 낸다고 하면 기본소득은 실행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계기로 `내가 낸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세금을 더 내겠다`는 동의를 받은 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과 인터뷰를 했는데, 조 원장님은 `코로나19로 인해 노후 보장보다 당장 먹고 살 생계를 걱정하는 분들이 넘쳐나니 이 참에 연금 개혁을 잠시 늦춘 뒤 코로나19가 안정된 이후 국민들의 생활이나 소득 상황을 분석해 연금 개혁을 포함한 사회복지 체계의 대전환에 나서되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도 함께 고려해 보자. 이를 위해 기본소득 실험을 서둘러 해보자`고 하더라구요. 공감하시는지요.

△그렇죠. 기본소득 지급액을 적게 하려면 복지체계 전반의 큰 그림을 안 그려도 상관없습니다만, 한 달에 지급하는 금액이 20만원, 30만원 이렇게 커지다 보면 복지체계 전반에 대해 합의하는 게 필요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을 한 번에 맞춰서 나가면 쉬운데 한 부분만 먼저 삐져 나가면 전체를 맞추는 게 힘들 수 있죠. 우리나라만 봐도 국민연금만 유독 삐져 나가있습니다. 다른 복지제도에 비해 국민연금의 덩치가 너무 커 복지 전체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국민연금은 왜 문제인가요.

△우리 국민연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중산층이 많이 받는다는 겁니다. 가입기간이 길고 액수가 큰 중산층에 혜택이 커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킵니다. 공무원연금 등도 마찬가지구요. 이러다 그리스처럼 될 수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은 잘 살고, 그 외엔 가난해지는 양극화 말이죠. 나라 재정은 잘 사는 사람들 연금 주느라 낭비되고 세금은 더 걷기 어려워지고. 우리의 국민연금 수익비(본인이 낸 돈 대비 받는 연금액)가 1.8배 정도인데, 이건 경제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우리 사회에 복지 사각지대가 많은데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이런 사각지대 해소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 증세를 전제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국방이나 경제분야 등에서 좀 줄인 재정은 선별 복지를 촘촘하게 하는데 쓰면 되구요. 우리 경제가 3% 성장만 해도 매년 예산이 30조~50조원씩 늘어나게 되니까 이것만 복지 예산으로 잘 써도 선별 복지에는 충분할 겁니다. 반면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목적세 증세가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탄소세나 토지세 등을 목적세로 신설하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했더니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목적세 신설에는 동의하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자신이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가 분명하고, 그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기본소득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목적세를 신설해서 늘린 재정을 (기본소득 지급 대신에) 취약계층에 우선적으로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증세를 할 수 있어서 그 늘어난 세금으로 기존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데 먼저 쓰면 좋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기존 복지의 구멍을 메우려고,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그 증세에 동의할까요.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자, 부양의무자를 없애는데 15조원이 더 든다고 그 돈을 중산층에게 세금으로 더 내라고 하면 누가 좋아 하겠어요. 역사적으로도 선별복지 하겠다는 사람들 중에 증세 운동에 성공한 적은 없었습니다.

-만약 토지세나 탄소세를 신설한다고 전제할 때 국민 1인당 어느 정도 기본소득이 가능할까요.

△일단 토지세에 대해서는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해 보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두차례 업데이트를 하는데요. 토지세는 세율을 0.5%로 신설하면 30조원 정도를 추가로 걷을 수 있을 것 같구요. 만약 1년에 30조원을 걷는다면 1인당 연간 60만~100만원씩, 매달 5만원 정도를 지급할 수 있을 겁니다. 탄소세의 경우 한 달에 30조원 정도씩을 걷는다면 1인당 10만원 정도 기본소득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추가로 근로소득·사업소득·이자소득·임대소득, 지대소득과 부동산 및 금융자산 양도소득 등 개인에게 귀속되는 모든 소득의 10%를 목적세로 걷으면 140조원 정도의 재원이 생기게 됩니다. 이를 통해 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결국 토지세와 탄소세, 모든 소득에 대한 10% 목적세 등 3가지를 모두 신설하게 되면 국민 1인당 매달 45만원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경제가 성장해 세수가 더 늘어 매달 50만원씩만 줄 수 있다면 이는 기초생활보장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니 모든 국민에게 기초생활 보장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기초생활보장의 생계급여도 조금 줄여도 될 겁니다.

-이런 목적세는 경제주체들에게 부담이 클 수도 있을텐데요.

△탄소세는 시작하기 나름인데, 시작을 약하게 하면 도입하는데 저항이 크지 않고 기업들에 미치는 충격도 덜하겠죠. 다만 이는 국제적 상황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는 제조업이 중심이 되다보니 탄소 배출도 많고 이런 여건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국제적 흐름에 맞춰 우리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다소 강하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법인세 부담은 높이지 않아야 하죠. 또한 모든 소득에 10%씩 목적세를 매기는 것도 국민들이 세율이 높다고 한다면 3% 정도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본소득 지급액이 조금 줄어드는 것이구요.

-지금 몇몇 지자체에서 청년층을 위한 기본소득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이렇게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계층만을 타깃으로 하는 기본소득도 의미있다고 보시는지요.

△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기본소득을 확대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모두에게 10만원으로 시작해서 30만원까지 올라가는 방법이 있구요. 또 하나는 특정계층에게만 30만원을 주는데서 시작해 대상을 늘려가는 방법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아동수당 대상을 20세까지로 늘리고, 30세까지 청년수당을 주면서 차츰 연령별로 확대해 가는 식이죠. 상황에 따라서는 농민에게 먼저 지급하는 등 직업별로 확대하는 전략도 가능하구요. 다만 연령이나 직업별 확대 전략은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세금을 걷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줄테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싫어하는 국민들이 있겠죠. 물론 기본소득을 어떻게 도입하고 확대할 지는 국민 합의에 달린 겁니다.

-청년 기본소득 도입과 국민연금 개혁을 빅딜 형태로 바꾸는 건 어떨까요.

△둘 다 해야 하는 일이니 가능할 수 있겠죠. 국민연금 문제는 크게 3가지인데요. 첫째 고소득자가 아닌 이상 한 달에 50만원씩 받는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생계 보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둘째, 현재의 0.8배 수익률로는 30~50년만 지나면 수익이 안 나니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셋째 이제부터라도 타이트하게 운영하자고 납부액을 높이고 수급액을 낮추자고 하면 청년들은 덜 받고 더 내야 하는 세대 간 불공정 문제도 생기죠. 결국 연금 개혁으로 `더 내고 덜 받자`고 하면 1번과 2번 문제는 해결되지만 3번 문제는 해결이 안됩니다. 그러니 연금 개혁이라는 정책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이죠. 이 때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수단이 들어가면 세 가지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잘 모르겠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5년 뒤 모든 국민에게 10% 세금을 걷어서 50만원씩 기본소득을 주면서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에게도 50만원을 주되 국민연금 A값(소득재분배 기능을 위해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반영한 부분)을 없애는 겁니다. A값이 평균 30만원인데, 이를 없애면 노인들은 30만원이 줄어드는 대신 기본소득 50만원이 생겨 총 수령액이 늘어나게 되죠. 이 때 국민연금에서는 30만원의 부담이 줄어 재정이 안정되죠. 현재 돈을 버는 세대는 소득세 10%를 더 내서 어르신들까지 부양해야 하지만, 늘어나는 세금액은 매달 30만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대신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으니 납세자 80%가 지금보다는 이득을 보는 셈이죠. 특히 소득세는 현 세대 중 부자들이 더 많이 부담하니 정책 목표도 달성됩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런 식까지 논의가 진행될 단계는 아니구요. 나중에 소득세 10% 신설 합의가 되는 시점에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이 논의를 꺼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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