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황금알 거위, 잡을 것인가 키울 것인가

안승찬 기자I 2020.09.10 06:0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가난한 농부에게 어느 날 찾아든 거위가 황금으로 된 알을 낳자, 농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농부는 거위를 죽이고 만다.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이 이야기가 그저 우화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더 많이 길러 낼 생각은 않고, 거위의 배를 갈르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선 기업과 부자들이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다. 작년 한해동안 기업들이 낸 법인세는 72조2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상위 1%의 법인이 전체 세금의 78.4%를 부담했다. 소득세는 총 89조1000억원을 걷었는데 상위 1%가 41.6%를 부담했다. 1%의 기업과 1%의 부자들이 거의 100조에 가까운 세금을 내고 있었다는 뜻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많아지면 나라의 곳간은 풍성해지고 국민 개개인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황금알 낳는 거위를 더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득주도 성장과 같은 정부 정책으로 기업의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부담은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선순환을 더디게 만든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더해져 기업의 대내외적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실정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최고 세율이 22%에서 25%로 높이졌고, 소득세 최고세율은 4년 만에 38%에서 45%까지 치솟았다. 거위가 배불리 먹고 충분히 쉬어야 황금알을 낳을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알만 많이 낳으라고 쥐어짜는 형국이다.

이런 정책엔 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이 욕망이 합리성과 합법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욕망은 죄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개인, 또 성장하려는 기업이 사회 전체를 살찌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야 기업가 정신이 고양된다. 기업가 정신이 온 사회에 꿈틀거릴 때, 당근마켓, 왓챠, 요기요, 배달의민족처럼 작지만 강한 벤처가 태어나고 제2의 카카오, 네이버를 꿈꾸며 땀을 흘리게 된다. 치열한 경쟁과 혁신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이 삼성, 하이닉스, LG와 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부단한 경쟁, 부의 창출, 축적에 대한 열망보다 부의 평등한 재분배에만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다. 부자와 기업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옥죄는 정부의 조세정책은 이런 인식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이어가는 선택을 불로소득으로 호의호식 하는 것으로 보고 시샘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일군 기업에 애착을 갖고 이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시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려는 의지로 볼 것인가. 내 자식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하려는 부모의 노력을 교육의 평등성을 해치는 행위로 볼 것인가, 아니면 80%의 국민을 먹여 살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우는 행위로 볼 것인가. 같은 현상을 보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를 버는 룩셈부르크가 될 수도 있고, 나라경제의 근간이 무너져 정확한 경제규모조차 산출하기 어려운 북한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나라를 롤모델로 삼을 것인가. 부자와 기업에게 세금 폭탄을 터뜨려 배를 가르면 당장 속은 시원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뒤엔 책임이 따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으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 살텐가. 배를 가른 이후의 결과를 감당할 자신은 있는가.

고용 없는 성장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일회성 일자리가 아닌 건실한 기업이 만들어내는 좋은 일자리다. 그냥 일자리가 말고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좋은 일자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무대를 향한 집요한 지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무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에 대한 경시,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만들어내는 각종 규제 속에서 우리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도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 움직임은 더 강해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데에 마음을 보태고 다 같이 응원하는 일이다. 그래야 길이 열린다. 기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의 증진을 어떻게 보는지, 그 부를 증진시키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만들어진다. 거위가 많아진다는 건 내 아이가 더 좋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약속과 같다. 거위의 배를 가를 일이 아니라 거위 팬클럽과 팬덤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생각과 인식이 아이들의 좋은 일자리를 약속한다. 그래야 규제를 막고, 기업인을 응원하고, 기업을 세계로 당당히 뛰쳐나가게 하고, 우리의 의식주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이웃이 많아지는 길이다.

내 자식, 내 자손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 내는 좋은 기업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최고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가 아닐까. 오늘이란 역사를 쓰며 누구나 다 같이 민초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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