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유동성을 확대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현상이 21세기 들어서면서 뚜렷해졌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돈을 마구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아 선진국 중앙은행 책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서, “물가는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통화주의(通貨主義) 강령이 무색하게 되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원가가 점점 낮아지는 데다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로 유통단계가 줄어들며 중간 차익이 줄어 물가가 오르지 못한다. 다시 말해 화폐수량설(MV=PY)에서 유동성(M)을 완화해도 돈이 도는 속도(V)가 떨어지면서 물가(P) 상승압력이 줄어들었다. 빈부격차 심화로 소비수요기반이 취약해져 물가가 오르지 않는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개방화로 역내·외 생산물 이동이 빨라져 기후변화 같은 일시적 수급불균형 현상에 따른 현저히 줄어들었다. 독과점업자의 고가정책 횡포도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셋째, 거시경제상황과 관계없이 외국인 움직임에 따라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불협화음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포트폴리오투자(FPI) 자금이 빈번하게 유·출입되면서 금리·주가·환율이 거시경제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진다.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지며,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금융과 실물의 괴리’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까닭이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상관관계가 불분명해지고 있어서 통화관리 방향을 제대로 잡기가 어려워졌다. 2~3년 전인가, 경기수축기임에도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가 오르지 않아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한다”는 고민을 한다는 보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후진국일수록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당위성 사이에서 고뇌하다보니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펼치기보다는 오히려 거시경제상황과 어긋나게 펼치는 경우가 상당하다. 예컨대, 경기 과열상태에서 지속적 경기부양을 위하여 유동성을 팽창시킨다든지, 경기가 수축되는 상황에서 부동산시장 조율을 위하여 (기준)금리를 인상하려 드는 경우다. 돈의 가치변화가 경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