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 BTS 인기편승, 정치권 정쟁 더는 안된다

e뉴스팀 기자I 2020.10.15 06:00:00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2000년 초 유승준은 대중 가수로서 한껏 물이 올랐다. 그러나 한순간 배신자라는 낙인과 함께 국민적인 밉상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병역의무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2002년 1월 돌연 출국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병역을 면탈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성난 불길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는 18년째 한국에 입국하지 못한 채 유성처럼 떠돌고 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여전하다.

지난해 입국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에는 닷새 만에 20만 명이나 동의했다. 10일 국감에서 모종화 병무청장은 “계속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로 이런 정서를 대변했다. 그는 “유승준이란 용어를 쓰고 싶지 않고, 스티브 유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유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며 선을 그었다. 유승준은 자신에게만 지나친 잣대를 대고 있다며 반박했다. 최근 5년 동안 외국 국적을 취득해 병역 의무가 말소된 사람은 2만 명을 넘는다는 수치까지 제시했다.

유승준은 비자발급 거부 취소소송을 다시 제기한 상태다.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그가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유승준 논란은 한국사회가 병역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병역은 공정을 가늠하는 민감한 잣대인 셈이다.

정치권에서 방탄소년단(BTS) 병역을 놓고 뜨겁다. “병역은 당연한 의무이며,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하겠다.” 기자회견에서 BTS는 군에 가겠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말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졌다. 이낙연 대표까지 나서 함구령을 내렸지만 병역 특례를 줘야한다는 여당 정치인들은 계속되고 있다. BTS 인기에 편승해 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은 아닌지 헛웃음이 나온다.

BTS가 이룬 그동안 성취는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한류 전도사이자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겐 보물과 같다. 경제적 효과는 10년 동안 60조 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BTS이니 짐을 덜어주자는 국민 정서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져야하는 의무다. BTS도 피할 수 없다. 당장 1992년생인 진(김석진)부터 징집이 가까워 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정 현안점검 조정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특례 검토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공정성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여당 정치인들이 BTS 병역 특례를 주장하고 나서니 아연할 따름이다. 병무청장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욱 국방장관 또한 “병역 특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입영 연기 가능성은 열어 놨다.

반면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은 “대중문화예술인도 병역 특례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행 병역법은 순수예술인과 체육인에게만 병역 특례를 부여하고 있다. 특례 요원은 4주 기초 군사훈련과 해당 분야에서 봉사 활동(544시간)으로 군 복무를 갈음한다. 여기에 대중문화예술인은 빠져 있다. 형평성 논란은 당연하다. 그러나 BTS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다.

문화예술인과 체육인에게 기량은 결정적이다. 기량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군 복무는 암초다. 누구라도 병역 혜택을 받고 싶은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특례 제도를 악용한 비리도 심심치 않았다. 2007년 병역 특례업체 수사 결과 입건 77명, 구속 22명에 달했다. 당시 국민들은 부유층과 권력층이 가담한 병역 비리에 분노했다. 어쩌면 BTS 병역 특례 논란은 우리사회 공정성을 다시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점이 되리란 생각이다.

많은 이들은 BTS가 공정한 잣대를 세워주길 기대하고 있다. 스티브 유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BTS는 성숙한 언행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병역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BTS는 30세까지 군 입대를 늦출 수 있다. 법 개정과 관계없이 BTS가 앞장서 병역을 이행한다면 어떨까. 많은 국민들은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럴 때 누구도 대중예술이 순수예술보다 하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덧붙이자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간 차별을 없애는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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