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시즌되면 한숨"..누구를 위한 기업인 증인 신청인가

이승현 기자I 2020.09.28 06:00:00

국감 시즌되면 기업들 증인 신청 문제로 몸살
차량결함으로 정의선, 부동산 문제로 이해진
총수 출석을 의원 이름알리기 수단으로 활용
재계, 증인 신청 관행 개선돼야.."경영권 침해 우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승현 이성기 기자] 한 대기업에서 대관업무를 맡은 A씨는 매년 9월만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 의원실에서 나오는 국정감사 기업인 증인 신청 때문이다. 혹시 자신의 그룹 관계자들 명단이 포함돼 있을지 미리 파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총수 등 오너가를 부른 경우다. 이때는 총수의 국회 출석을 막아야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동안 관계를 맺어온 의원실 보좌진을 접촉, 설득 작업에 돌입한다. 증인 신청 자체를 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총수 대신 전문경영인이나 그 사안을 담당하는 임원이 출석할 수 있도록 한다.

총수 출석, 의원 이름 알리기 위한 수단 활용해

사실 A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관 담당자들이 매년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국감 때만 되면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기 때문이다. 부르는 이유가 타당하면 그나마 수긍은 간다. 하지만 아주 지엽적인 일로 총수들을 부르는 경우가 왕왕 있어 골치를 앓는다. 예를 들어 올해 정운천·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대기업들의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5개 그룹 총수를 모두 증인으로 신청했다. 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차량결함 문제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같은 당 오기형 의원은 네이버부동산 독과점 문제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는 이런 일로 그룹 총수를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그룹 총수에게 이런 세부적인 일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막상 부르고 나서도 기업의 입장을 충분히 듣기보다 본인 주장만 늘어놓기 일쑤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올해는 상황이 더 녹록지 않았다. 국회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부터는 외부인의 국회 출입 자체가 금지되면서 의원실 관계자들을 찾아가기도 쉽지 않게 돼 더 답답한 상황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부른 의원실 관계자들에게 전화해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관계자들은 그가 하도 전화를 걸어대니 “그만 좀 하라”고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다.

내년 경영계획 세워야 할 때인데 국감에 매달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같은 노력 덕분인지 올해 증인 신청에서는 대기업 총수는 한 명도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이슈를 담당하는 사장과 부사장, 전무 등 임원진은 몇 명 증인으로 결정돼 국감장에 나가야 한다.

당장 증인 채택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이제부터는 실제 국감장에 나가는 임원들의 답변 자료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나가봐야 발언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도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꼼꼼하게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A씨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한다. 9~10월이면 기업들은 내년도 경영계획을 세우기 위해 분주한 때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때라 내년도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비생산적인 일에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인력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와 미·중 갈등 등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인데, 국회는 올해도 국정감사로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국정감사까지 겹쳐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매년 국감 때마다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기업인 증인 신청 관행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인 증인 신청에 대해 신중할 것을 요청하면 수긍하는 듯하면서도 국감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같은 행태를 반복한다”며 “여야가 진정으로 국가 경제를 생각하고 기업 경영이 잘 되길 바란다면 기업 괴롭히기 식 증인 신청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이 국감 때마다 불려 나가는 국회 정무위원회나 산자중기위, 과기정통위, 환노위 중 산자위는 기업인의 증인과 참고인 출석을 줄였지만, 정무위는 오히려 작년보다 늘렸다. 또 다른 단계 관계자는 “국정감사는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로, 말 그대로 국정에 대한 감사여야 하는데 민간에 대한 감사로, 기업감사로 변질되고 있다”며 “자칫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국회에 기업인들이 직접 출석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회의장은 50인 미만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국회 자체에 보좌진과 언론 등 많은 인력이 상주하는 곳이라 방역에 취약할 수 있다. 만약 출석한 기업 대표나 임원들이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라도 되면 기업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감 자체를 화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과방위 박성중 간사와 허은아, 항보승희, 박대출 의원이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네이버 이해진·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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