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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운임담합 시대 이미 끝나…해운담합은 명백한 불법”

조용석 기자I 2022.01.27 07:03:00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 인터뷰
“해운법 요건·절차 안 지켜…감시하고 벌과금 매긴 불법”
EU도 운임담합 폐지…“공동행위 핵심은 자원공유”
“한진해운 경영실패로 파산한 것…운임담합 관련없어”
김영무 해운協 부회장 6연임…“해운협회도 달라질 때”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사진 = 조용석 기자)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해상 운임 공동행위 허용이 일반적이라고요?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SK), MSC, 하팍그로이드(Hapag-Lloyd) 등이 있는 유럽연합(EU)은 2008년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를 예외로 두지 않고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이번 ‘한~동남아 운임담합’은 해운법에 규정된 신고·협의절차를 어긴 것으로 명백한 불법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무적으로 과징금을 낮춰서 부과했을 뿐이죠.”

“해운법 요건·절차 안 지켜…감시하고 벌과금까지 매긴 불법”

구교훈(63·사진)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지난해 공정위가 한~동남아 노선 운임담합 제재에 착수한 이후 해운·물류 등 관련 학계 누구도 불법 담합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터라 그의 말은 신선하게 들렸다. 물류학 박사이자 한국물류관리사협회장을 지낸 구 교수는 대학에서 해운을 포함한 국제운송실무와 해상보험을 가르치는 전문가다.

먼저 구 교수는 이번 운임담합은 해운법에 따른 합법적 공동행위로 볼 수 없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운법 상 공동행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요건(해수부 신고)과 절차(화주와 협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위가 제재한 것 아니냐”며 “자기들끼리 서로 담합을 감시하고 안 지킨 선사에 대해 자체 벌과금까지 부과했다는데 이게 불법 담합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최대 8000억원이 예상됐던 공정위 과징금이 900억원대로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국회·언론·노조, 그리고 해운 재건을 강조하는 청와대의 은근한 압박까지 더해지다 보니 공정위가 정무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사진 = 연합뉴스)


구 교수는 정기선 동맹 UN협약인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 상 라이너코드에 따라 운임담합을 했고 해외도 이를 허용한다는 해수부·해운협회의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2003년 OECD 보고서는 정기선사 가격담합 및 공정거래법 예외 폐지를 권고했고, 글로벌 선사가 몰려 있는 유럽에서도 같은 의견(2003년 유럽위원회 협의서)이 나와 결국 2008년 EU 위원회도 폐지했다”며 “극동화물회의(FEFC)와 대서양횡단회의협정(TACA)에서도 운임담합 시도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더는 해상 운임담합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어 “해운 공동행위는 운임담합이 아닌 선복공유·공동운항 등 한정된 배라는 자원을 공유해 효율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하지만 해운사들은 자원이 아닌 영업(운임)을 공유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진해운은 경영 실패로 망한 것…“해운협도 변해야”

구 교수는 해운업계가 지난 2016년 한진해운 파산을 거론하며 담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해운 파산은 경영전략 실패에 따른 것인데 이를 엉뚱하게 연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16년 당시 국내 1위 원양선사였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채권단 공동관리를 신청하기 전 보유주식을 전량 처분했고, 추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실형(징역 1년 6월) 및 벌금 12억원의 형사처벌을 받았다.(사진 = 뉴시스)


그는 “한진해운 파산은 해운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된 용선(배를 빌리는 것) 계약을 맺은 경영 실패의 결과이지 담합과는 관련이 없다”며 “당시 한진해운은 배를 직접 건조하는 투자 대신에 높은 가격에 장기 용선 계약을 맺었는데 갑자기 용선 금액이 떨어지면서 홀로 비싼 용선비를 내다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당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요 용선사 중 하나인 시스팬(Seaspan)사 대표를 직접 찾아 용선료 인하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어 구 교수는 “해운사들이 지금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을 두고 존폐 위기라고 말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해운 경기 호황으로 HMM(011200) 같은 대형선사는 영업이익 6조~7조원도 예상된다”며 “만약 이 정도 과징금도 못 낼 정도로 어렵다면 선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해운업계에 그동안 어떤 투자를 해왔는 지도 묻고 싶다”며 “정부는 모든 해운사를 껴안을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M&A를 해서 선사 덩치를 키우는 동시에 중소 해운사에 퇴로도 열어주는 전략을 써야 해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MSC, 머스크 등 유럽 대형선사는 경쟁적인 인수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 교수는 해운협회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해운협회가 자신들이 가격 협상력이 없는 을(乙)이라고 하소연하나 이는 5% 정도인 대형 화주(화물주)에 해당하는 상황일 뿐 95%의 중소기업에는 여전히 절대 갑(甲)이라는 게 구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는 해운담합 사태와 관련 대기업 중심의 무역협회와 달리 강력하게 비판했다.

구 교수는 담합사태 대응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무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부회장은 최근 정기총회에서 6연임에 성공, 임기를 모두 채우면 모두 16년을 해운협회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는 “한 협회에서 특정 상근부회장이 6연임을 하고 15년을 넘게 일하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해운협회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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