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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붕없는 미술관', 봄 햇살에 바스라지다

강경록 기자I 2018.04.20 06:00:00

남해안 끝자락 전남 고흥 봄여행
용이 바다에 새긴 하늘의 꿈, 미르마루길
편백, 삼나무 숲으로 감싸인 '봉래산'
하루에 딱 두번만 허락하는 섬 '우도'

외나로도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고흥반도


[전남 고흥=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른 아침 들이치는 바람결이 포근하다. 창문으로 침입하는 햇살은 따사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어느새 봄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남해안 끝자락 전남 고흥은 봄 햇살이 바스러지는 소리에 귀와 눈이 따가울 정도다. 산길과 해안길은 따사롭고 온화하다. 봄 햇살을 받으며 걷고, 때로는 쉬며 호사를 누린다. 상록 숲에서 만나는 피톤치드는 덤이다. 이뿐인가. 고흥 땅 어디든 초록으로 가득 차 있다. 액자에 가두어 그대로 간직하고 싶을 정도. ‘지붕 없는 미술관’이 있다면 바로 고흥이다. 섬 능선길 경치도, 전망도, 등대 밑 해안 절벽에서도 봄 정취는 가득하다.

미르마루길 길은 유채꽃 핀 다랑논 사이를 지나 해안 절벽을 따라 걷도록 조성했다.


◇용이 바다에 새긴 ‘하늘의 꿈’

미르마루길 용바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암지층 절벽과 널찍한 반석이다
고흥 봄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봄 바다의 정취다. 그중에서도 영남면 남열리에서 우천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단연 압권이다. 이 일대는 지난 2012년 산림청이 ‘우리나라 100대 산림경관관리지역’으로 꼽은 곳이다. 길을 따라 다도해의 봄 바다가 주르륵 펼쳐지고, 남열해돋이해변·우주발사전망대·사자바위·용바위 등의 명소도 몰려있어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이곳에 새길을 열렸다. 미르마루길이다. 미르는 ‘용’, 마루는 ‘하늘’(우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총 길이는 약 4km. 왕복으로 3시간 정도면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과 나로호 발사의 역사적인 순간을 볼 수 있는 우주발사 전망대, 용바위와 사자바위에 얽힌 전설 등 고흥의 생태문화를 즐길 수 있다. 미르마루길의 가장 큰 장점은 여태 볼 수 없었던 웅장한 해안 절벽을 줄곧 눈에 담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들머리는 우주발사전망대다. 고흥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나로호우주센터와 직선거리로 17km 떨어졌다. 본래 우주선 나로호의 발사광경을 바라보기 위해 지어진 것이지만, 우주선 발사보다는 주변의 빼어난 해안 경관을 바라보는데 더 적격인 명당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낭도, 목도, 증도, 장사도, 하화도 너머로 여수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발아래로는 해안가 다랑논의 계단과 남열해변의 경관이 그림 같다.

전망대에서 시작한 길은 사자바위와 다랑논, 몽돌해변 등 여러 볼거리를 품었다. 용굴 등 기암절벽도 지난다. 곳곳에 스카이워크 전망대와 용 조형물 등도 세워뒀다. 특히 용암마을 언덕에서 보는 해안 풍경이 빼어나다. 용암마을에는 고흥 8경 중 6경인 영남 용바위가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암지층 절벽과 널찍한 반석이다. 바닷가에서 절벽을 따라 용의 흔적이라는, 암석 띠가 드러나 있다. 마을에는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 용두암도 있다. 둥근 갓처럼 생긴 자태가 압도적이다. 승천의 꿈을 품은 해룡의 전설과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발자국이 기이하여 몇 번이나 손으로 만져본다. 억겁의 풍상이 남긴 반석은 기묘한 광경으로 신비하다.

외나로도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편백과 삼나무 숲


◇ ‘숲’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봉래산 하산길에는 우거진 삼나무,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고흥읍에서 더 남쪽에 자리한 외나로도의 봉래산(410m). 이곳에서는 오래된 아름드리 편백 숲길을 걸을 수 있다. 고흥에서 내나로도 연륙교를 건너, 다시 내나로도에서 외나로도 다리를 건너야 하는 멀고 먼 곳이다. 정확한 지리명은 봉래면 예내리다. 이 산자락에 편백 700여 그루와 삼나무 2000여 그루가 심겨 있다. 대부분 수령이 100년 가까이 된 것들이다. 1920년대에 예내면 산림계원들이 당시 황폐했던 봉래산을 살리기 위해 심었다.

봉래산 편백 숲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숲’을 보거나, ‘나무’를 보는 것이다. 숲을 보려면 산행을 선택하는 게 좋다. 무선국~봉래산 정상~시름재로 이어지는 코스다. 나무를 보려면 무선국~시름재로 돌아가는 숲탐방로 코스를 이용하는게 좋다.

들머리는 무선중계소 주차장. 여기서부터 봉래산 정상까지 오르막 코스다. 정상에서 시름재까지는 내리막 코스로 일반 산행과 다를 게 없다. 총 6.4km 남짓한 거리로, 보통 3~4시간 코스다. 주차장 왼편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바로 갈림길이다. 봉래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숲 탐방로 코스다. 일단, 숲을 보기 위해 정상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약 20여 분간은 오르막이다.

오르막이 끝나면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북쪽으로 외나로도와 내나로도가 연결하는 연도교가, 남쪽으로는 나로우주센터가 내려다보인다. 그 뒤편은 예내저수지다. 약간의 굴곡이 있지만,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며 정상까지 길은 이어진다. 곳곳에 전망대도 있어 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섬들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다. 이 광경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래산을 이름을 따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상을 지나 시름재로 넘어간다. 이 길은 삼나무와 편백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숲은 예내저수지에서 시작해 봉래산 칠부 능선 군락까지 삼나무와 편백으로 빼곡하다. 서서히 신록으로 물들고 있는 다른 나무와 달리 일 년 내내 푸름을 유지한 채 곧게 뻗어 있다. 나무둥치 사이로 이어지는 숲길에서는 나무 향이 어찌나 짙은지 아찔해질 정도다.

전남 고흥의 우도는 하루에 딱 두번만 물길이 열린다.
◇하루에 딱 두 번만 허락하는 섬

내나로도 형제섬의 일몰
득량만의 ‘우도(牛島)’도 빼놓기에 아까운 곳이다. 섬 이름처럼 소가 누워있는 모양과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고려말에 섬에 들어와 살던 황씨가 지형을 살피다 소의 머리 형상을 한 암석을 발견하고, ‘소섬’ 또는 ‘쇠섬’이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섬에 대나무가 많아 한때는 우죽도(牛竹島)라 부르기도 했다. 고흥 섬 중 유일하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지금도 70여 가구가 사는 작지 않은 섬이지만, 관광지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지금은 하루 두 번 열리는 바닷길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도 많아졌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남양면 중산일몰전망대에서 가깝다. 물이 빠지면 6시간가량 바닷길이 열린다. 이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섬까지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입구에는 앞으로 2개월간 바다가 갈라지는 시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외에도 ‘바다타임닷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3km로 걸어서도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루 두 번 간조 시에 물길이 열린다. 물이 들어오면 12시간 동안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12시간 동안은 육지가 된다. 사실 지금이야 물이 빠졌을 때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놓였지만, 과거에는 뭍에 나오려면 물 빠진 뻘밭을 걸어야 했다.

밀물과 썰물 때를 기다렸다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갯벌에 나가 바지락과 낙지를 잡는다. 물때는 하루하루 달라지는데 보통 바닷길은 6시간 동안 열린다. 물이 많이 들어오는 사리 때에는 시간이 길어지고, 물이 조금 밀려드는 조금 시에는 시간이 짧아진다. 물이 빠졌을 때는 무인도인 각도와 보치섬이 우도와도 이어진다. 또 상구렁섬, 중구렁섬, 소구렁섬도 나란히 형제처럼 떠 있다. 무인도 주위 갯벌에서 다량의 굴과 바지락, 낙지 등 수산물도 많이 잡힌다. 우도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이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전남 고흥 해주식당의 낙지팥죽


◇여행메모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어 완주에서 다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들어서 순천에서 내려선다. 여기서 벌교를 지나면 바로 고흥이다.

△잠잘곳= 사실, 고흥은 숙박시설이 많지가 않다. 그중 최근 문을 연 고흥읍 외곽에 자리한 명품무인호텔(832-6300)이 그나마 깨끗하다. 마복산 아래 목재문화체험장(830-5123)의 전통한옥체험도 권할 만하다.

△먹을것= 고흥낙지는 몸에 꽃무늬가 있어 ‘꽃낙지’라고 한다. 꽃낙지는 작아서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다. 매년 4~5월경에 금산 앞바다, 나로도, 초도, 거문도 해상에서 집중적으로 잡힌다. 갯벌에서 바로 잡아 참기름과 함께 깨소금, 달걀 노른자에 비벼 먹는 산낙지 맛은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다. 국물이 시원한 낙지연포탕과 낙지를 살짝 익혀 양념하여 볶아 먹는 연포구이도 즐겨 찾는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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