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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갤러리] 지겨운 장마철 유쾌한 장화 말리기…윤종석 '지혜로운 삶의 자세'

오현주 기자I 2020.08.12 04:05:00

2019년 작
'주사기 작가'의 자유로운 '드로잉' 작업
지독한 치밀함 대신 유연한 직관적 표현
일상 단편 기록…밑그림 넘어서 완결 봐

윤종석 ‘지혜로운 삶의 자세’(사진=도로시살롱)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붓 대신 주사기가 물감을 머금게 했다. 그러곤 그 뾰족한 끝이 한방울씩 떨궈낸 무수한 점과 점으로, 선을 긋고 면을 넓히고 윤곽을 가다듬고 형체를 빚었다. 주사기 본연의 역할인 피부를 뚫는 일도 이보다 조심스럽진 않을 거다.

작가 윤종석(50)의 이제껏 작업이 말이다. 그러던 그가 잠시 주사기를 내려놓고 파스텔과 연필을 쥐었다. 일상에서 휙휙 지나가는 소소한 단편을 ‘드로잉’으로 기록하려 했다는데.

그만큼 방식도 소재도 색도 질감도 가볍다. ‘지혜로운 삶의 자세’(2019)처럼 말이다. 파란 장화를 긴 작대기에 꽂아 말리는 깨알 팁은, 한 눈금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 주사기의 정교함으론 되레 표현이 어렵지 않겠나.

유연하고 즉흥적이며 직관적으로 ‘쓱쓱’ 그려낸 담백한 표현이 시선을 끈다. 그렇다고 흔히 밑그림쯤으로 여겨온 드로잉의 잣대를 들이대기엔 이미 완결을 본 그림이다. 어찌 됐든 지독한 치밀함에서 벗어났을, 비로소 ‘손맛’에 빠져보기도 했을 드로잉 자체가 작가에겐 ‘지혜로운 삶의 자세’이지 싶다. 최고의 긴장은 최고의 자유를 담보할 때 나오는 법이니.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도로시살롱과 서대문구 연희동 아터테인에서 동시에 여는 개인전 ‘가벼운 밤×다져진 땅’에서 볼 수 있다. 종이에 오일 파스텔·연필. 26×36㎝. 작가 소장. 도로시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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