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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심각한 저금리 착시현상

권소현 기자I 2020.10.12 05:00: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금융시장이 거시경제현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가능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생산과 소비활동을 합리적으로 유도하고 경제순환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경제는 과거 고성장·고물가 시대의 고금리 타성에 젖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저금리 착시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괴리되어 움직이는 상황에서 가계 기업 정부 구분할 것 없이 금리가 낮다고 착각하며 엉뚱한 선택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 불확실성을 크게 하고 있다.

잠깐만 생각해보자. 2020년 8월 현재 경제성장률 -3.2%, 물가상승률 0.7% 상황에서 시중은행 총대출 평균금리는 2.92%다. 실제 금융비용은 거시경제 상황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개인사업자든 기업이든 투자해서 자금조달비용을 제외하고 이윤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부 특정기업을 제외한 일반기업의 투자가 진행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은 기준금리도 아니고 국고채금리도 아니고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지불하는 비용인 시장금리다. 돈의 사용가격인 금리가 싸다고 오판하는 ‘저금리 착시상황’에서 기업투자가 활발하기는커녕 오히려 위축되는 원인이다. 기업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조건은 기회비용인 (자금조달) 금리가 적어도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값보다는 밑돌아야 한다.

타인자본이 아닌 자기자본으로 투자할 때도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인 금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인 금리보다 낮은 수익이 예상되는 사업을 영위하다가는 빚은 늘어나고 자기자본의 가치는 줄어드는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다. 유수의 선진국들이 ‘제로 금리’ 정책을 펼쳐도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해보자. 당국에서는 기준금리 0.50%에서 대출금리가 2.92%가 되는 비정상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생산부문으로 흐르지 못하는 시중자금이 저금리 착시현상으로 자산시장으로 유입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미래의 기대이익이 어두운 상황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들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투기적 행위와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잉 때문이라고 속단하고 억누르려 하니 투자심리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물론 예금이자가 과거에 비해 양에 차지 않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 쉽게 말해 실물생산부문은 돈 가뭄이 들고 자산시장은 돈 홍수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과 가계, 정부가 간과하면 안 될 사항은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상황에서 빚을 지게 되면 빚 갚기가 고성장·고물가·고금리 시대에 비해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고성장·고물가 시대에는 돈을 벌 기회도 많고 돈의 가치도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빚의 무게가 금방 가벼워진다. 그러나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는 돈 벌 기회도 줄고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빚의 무게가 떨어지지 않아 빚 갚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자칫 빚의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 고금리 때보다 저금리 때 빚을 더욱 두려워해야 경제적 패자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소위 ‘빚투’나 ‘갭투’의 위험이 산지사방으로 회오리칠 수도 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유동성을 마구 풀어야 하니 혼란은 더 키질 수 있다.

저성장·저물가 시기에는 가계와 기업은 물론 정부도 빚지는 일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빚 갚기가 어려워지는 시기에 저금리라고 착각하고 빚을 늘려 투자하다가는 빚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도 경제성장률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성장률을 초과해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건 힘겨운 짐을 젊은 세대, 나아가 후손들에게 지우게 하는 일이다. 근세조선이 멸망한 까닭의 하나는 생산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 일제에게 빚을 뭉텅 졌다가 경제적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음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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