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자본이 아닌 자기자본으로 투자할 때도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인 금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인 금리보다 낮은 수익이 예상되는 사업을 영위하다가는 빚은 늘어나고 자기자본의 가치는 줄어드는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다. 유수의 선진국들이 ‘제로 금리’ 정책을 펼쳐도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해보자. 당국에서는 기준금리 0.50%에서 대출금리가 2.92%가 되는 비정상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생산부문으로 흐르지 못하는 시중자금이 저금리 착시현상으로 자산시장으로 유입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미래의 기대이익이 어두운 상황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들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투기적 행위와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잉 때문이라고 속단하고 억누르려 하니 투자심리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물론 예금이자가 과거에 비해 양에 차지 않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 쉽게 말해 실물생산부문은 돈 가뭄이 들고 자산시장은 돈 홍수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과 가계, 정부가 간과하면 안 될 사항은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상황에서 빚을 지게 되면 빚 갚기가 고성장·고물가·고금리 시대에 비해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고성장·고물가 시대에는 돈을 벌 기회도 많고 돈의 가치도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빚의 무게가 금방 가벼워진다. 그러나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는 돈 벌 기회도 줄고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빚의 무게가 떨어지지 않아 빚 갚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자칫 빚의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 고금리 때보다 저금리 때 빚을 더욱 두려워해야 경제적 패자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소위 ‘빚투’나 ‘갭투’의 위험이 산지사방으로 회오리칠 수도 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유동성을 마구 풀어야 하니 혼란은 더 키질 수 있다.
저성장·저물가 시기에는 가계와 기업은 물론 정부도 빚지는 일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빚 갚기가 어려워지는 시기에 저금리라고 착각하고 빚을 늘려 투자하다가는 빚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도 경제성장률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성장률을 초과해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건 힘겨운 짐을 젊은 세대, 나아가 후손들에게 지우게 하는 일이다. 근세조선이 멸망한 까닭의 하나는 생산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 일제에게 빚을 뭉텅 졌다가 경제적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음을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