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그리고 법률]위대한 유산기부

이성기 기자I 2019.12.07 08:21:00

원혜영 의원 등, 유류분 제도 개선 민법 일부 개정안 발의
"유산기부 문화 활성화 위한 제도 개선 나서야"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유) 지평 마상미 변호사] “내가 죽으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 단체에 기부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가끔씩 공익단체에 이런 유산기부에 관한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전세보증금을 기부하겠다`, `사망 보험금이 나오는데, 얼마 안 되지만 기부하고 싶다`는 문의도 있다.

미국, 영국 등 기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산기부가 사회공익 실현과 사회자본 축적 및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부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도 기부에 관한 의식의 발달과 함께 비혼,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사회 구조적 변화로 인해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유산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비해 유산기부가 이뤄지고 집행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유산기부는 계획기부, 사회적 상속과 같은 차원으로도 설명되고 있는데 법률적으로는 유언을 통해 상속재산이 공익 목적에 사용되도록 법정 상속인이 아닌 공익법인 등을 수증자로 지정해 기부하는 것이어서 상속법의 규율을 동일하게 받는다.

따라서 민법이 정한 엄격한 유언의 방식을 따라야 효력이 발생한다. 판례 중에도 유언의 방식을 갖추지 못해 유산기부가 무효화 된 사례가 있고, 실무에서 검토 중에 유언의 방식을 갖추지 못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유산기부가 적법한 방식에 따라 이뤄진 경우에도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으로 인해 유산기부자(유언자)의 뜻이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기부자가 생전에 공익단체에 기부할 경우에는 유류분 반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으나 유산기부, 즉 유언으로 증여를 하는 경우에는 유류분 반환을 피하기 어렵다.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유산기부자)이 증여나 유증을 했다 하더라도 빼앗을 수 없는 상속인의 권리이다. 아버지가 공익단체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 아들(상속인)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것이다. 직계비속 및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절반, 직계존속 및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는다.

실제로 유산기부자가 공익단체에 재산을 유증하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공익단체가 유증을 받았으나, 상속인들이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 반환된 사례도 있다. 유류분 반환을 고려해 미리 재산의 50%만 기부받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류분 부족액을 계산할 때 생전 특별수익을 고려해야 하고 특별수익의 가액은 먼 미래인 상속개시를 기준으로 하며 증여보다 유증에 대해 먼저 반환하는 등의 복잡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유류분 반환의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에 지난 10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4인은 유산기부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현행 유류분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을 현행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로 축소하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 범위에서 제외하며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 또는 유지에 기여가 없는 직계비속이 피상속인 사망 전 5년 이상 피상속인과 연락을 단절해 그의 연락처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유류분의 사전포기 제도를 도입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및 배우자가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상속 개시 전에 유류분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공익단체의 유산기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독신으로 배우자나 직계비속(자녀)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형제자매에게도 유류분권이 있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유류분권을 행사하는 것을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유산기부를 활성화 하는데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유류분 제도는 남아선호사상의 시대에 딸들의 권리를 찾아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터라 유류분 사전포기 제도가 전면 도입될 경우 악용될 우려가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그러나 최소한 공익재단에 유산을 기부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유류분의 포기를 인정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다.

유산기부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유산기부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바란다.

☞마상미 변호사는

△이화여대 법대 △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지평 가사상속팀, 건설·부동산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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