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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먹고사는문제' 연구였나 [검찰 왜그래]

이배운 기자I 2023.06.24 10:10:10

공익법인 돈으로 송영길 선거 돕고 유권자 식사대접 의혹
檢 "가장 민주적이어야할 선거의 본질 훼손한 중대범죄"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먹고사는문제연구소’에 칼을 겨눴습니다. 먹사연의 돈이 송 전 대표의 당대표 선거를 돕는 데 쓰였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사는문제연구소’ 개소식 홍보 이미지
먹사연은 통일·복지·경제 정책을 연구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익법인입니다. 공익법인은 정해진 용도로만 예산을 사용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해서 선거운동 역시 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정치자금법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예금계좌로 정치자금을 사용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선거 운동 과정에서 먹사연의 돈을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입니다.

송 전 대표와 먹사연의 인연은 뿌리 깊습니다. 송 전 대표는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지지조직 ‘동서남북포럼’을 만들었고 이 조직은 2015년에 지금의 ‘먹고사는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 송 전 대표는 개소식에서 “연구소를 통해 민생 현안을 중점적으로 다뤄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먹사연은 2021년 6월 송 전 대표를 연구소 고문으로 소개하며 그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고, 지난해 송 전 대표가 프랑스 파리로 떠나기 전에 환송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송 전 대표는 “동서남북포럼까지 하면 15년 된 것 같다”며 인연을 과시했습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번째 자진 출석을 거부 당한 뒤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먹사연과 송 전 대표의 위법 논란은 ‘이정근 녹취록’에서 시작됩니다. 검찰이 입수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휴대전화에는 7년간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 3만개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송영길 캠프가 현역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뿌리고, 먹사연 회계담당자가 송 전 대표 보좌관에게 돈을 건넸음을 추정케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검찰은 먹사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공교롭게도 일부 PC 하드디스크가 최근에 포맷·교체된 정황을 발견합니다. 먹사연 측은 “정기적인 PC 교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뭔가 나쁜짓의 흔적을 숨기려 했다고 보고 회계담당자 등 먹사연 직원 2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수사를 펼친 검찰은 송영길 캠프가 선거 자문 업체에 내야 할 1억원을 먹사연이 대신 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먹사연과 문제의 A업체가 용역계약을 체결했는데 A업체가 실제로는 송 전 대표의 선거를 도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A업체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에게 36억원의 계약을 따내는 등 야권 인사들이 주로 일감을 맡긴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야권과 워낙 인연이 깊어서 수상한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부분입니다.

수사를 계속하던 검찰은 송 전 대표가 현역 국회의원·지역본부장 등 유권자들에게 먹사연 자금으로 식사를 대접한 정황도 포착합니다. 이에 검찰은 때아닌 여의도 일대 맛집 순례를 벌이며 식당들의 카드결제 내역을 확보합니다.

검찰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송 전 대표는 유권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돈봉투를 뿌리고 식사를 대접하고, 이들 행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교묘히 공익법인을 이용한 것입니다. 정당법상 당대표 경선에서 유권자를 매수할 목적으로 금품·향응을 제공한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검찰 압수수색 (사진=뉴시스)
송 전 대표 측은 검찰이 ‘별건수사’를 한다고 반발합니다. 별건수사란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정황을 이용해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는 위법한 증거수집 행위로 보기 때문에 법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거를 확보했다는 입장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단서를 포착했는데 수사를 안 하는 것이 직무유기”라며 “이정근 녹음파일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확보한 증거이며, 법원의 영장심사 과정에서 증거 취득 적법성 여부를 계속 점검받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송 전 대표의 혐의들은 살인·성폭행 등 악질적인 범죄에 비하면 중요도가 떨어지고 실제로 처벌 수위도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닙니다. 일각에선 정치권의 ‘관행’을 인정해 눈감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선거라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송 전 대표의 말도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사건을 사회제도와 신뢰를 흔드는 범행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송 전 대표의 혐의들을 겨냥해 “매직·매표 행위로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라며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반을 훼손한 중대한 혐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사팀은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어느 사건보다 공정하게 수사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일부 피의자가 수사를 폄훼하고 있으나 그와 상관없이 사명감을 가지고 실체 규명에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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