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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폭력

e뉴스팀 기자I 2021.05.27 07:00:33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수개월째 돈 안 받고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이 있는지 묻고 싶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장경호씨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입이 급감한 자신들이 월급 못 받는 공무원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A씨는 꼬박꼬박 월급 받기에 공무원들은 자신이 처한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자살과 파산이 속출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25일 손실보상법 입법청문회를 열었다. 손실보상제가 4개월째 표류하면서 마련된 자리다. 여야 국회의원 117명도 기자회견을 갖고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허희영 카페대표연합회 대표는 민병덕 의원을 붙잡고 “신용불량 걸리고, 죽고 난 다음에 도울 것이냐”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어 “1만6,000명이 파산하고, 아이 엄마가 자살하고, 노부모를 두고 밤에 목맸을 사람 심정을 헤아려봤느냐”며 정부와 정치권을 질타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5인 이상 집합금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상황은 한층 악화됐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서울에서만 식당 16%가(2020년 말 이후) 사라졌다. 국가가 재난에 처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동안 국민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몇 가지 지표만 봐도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된다.

올 1월 말 기준 중소기업대출 잔액은(5대 은행 기준) 502조9,000억 원이다. 코로나19 이전 2020년 1월 448조원에 비하면 1년 동안 무려 55조원 12% 늘었다.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 역시 비슷한 기간 가파르게 상승했다. 2021년 1월 1,934억 원으로 2019년 12월 말에 비해 706억 원 57.5% 급증했다. 중소기업 연체율도(0.38%) 대기업(0.17%)보다 2배 이상 높다.

가계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 1분기 가계대출은 1,765조원. 지난 4분기와 비하면 37조6,000억 원 늘었다. 가계와 자영업자, 소상공인들 채무 증가는 우울한 지표다. 수입은 끊기고 정부 지원마저 여의치 않자 빚으로 연명한다는 증거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주장을 여실히 반영한다. 존C 머터 교수는 <재난 불평등>에서 재난은 사회적 약자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며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이후 정책자금을 적극 풀고 있다. 재난상황에서 큰 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독일은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1조 유로(1,350조원)를 긴급재정으로 편성했다. 프랑스도 GDP대비 50%를 지출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 국가 채무 비율은 최근 평균 25%증가하는 동안 우리는 4% 늘었다. 전체적인 평균 국가 채무비율도 선진국 135%, 한국 45%로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음에도 우리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착한 임대료’ 운동에도 쓴 소리를 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민간에게 떠넘기느냐. 모든 빚을 가계와 자영업자에게 떠넘기는 정부는 무능하다”고 했다.

정부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액이 피해액보다 많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 이후 지원금은 6조1,000억 원, 피해액은 3조3,000억 원이라고 한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소급 보상을 하면 기존 지원금 정산이 필요하고, 환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 업종 간 형평성 문제도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는 “정부 명령을 따른 국민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단 한 명도 손실보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6월 13일까지 3주간 또 연장됐다. 5인 이상 금지, 밤 10시까지 영업제한도 유지된다. 73만 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정부를 성토하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다 죽고 난 다음에 지원할 것이냐”는 글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월급쟁이 공무원이 아닌 자영업자 시선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시민들 희생만 요구할 것인가. 다시, 국가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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