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다음 생은 차라리 안태어 날래요"... 스스로를 가두는 취준생

박서빈 기자I 2020.11.17 00:05:58

취준생, 10명 중 6명 '은둔형 외톨이' 경험
코로나19와 고용시장 악화로 집 안에 고립
전문가 "개인의 문제 아닌 사회가 만든 현상"

(사진=이미지투데이)


김희연(가명·24세)씨는 7개월 차 ‘은둔형 외톨이’다. 벌써 6개월째 집 밖으로 두문불출이다. 김씨가 세상과 소통했던 마지막 시간은 지난 4월 회사를 퇴사하기 전이다.

김씨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그녀를 둘러싼 환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회사 재정이 악화돼 퇴사를 하고 난 이후 자연스럽게 집 안에만 있게 됐다. 재취업을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도 냈지만 실패의 쓴 맛만 봤다.

김씨는 “(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될 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다”며 “취업 준비도 사회생활도 다 돈이 필요한데 얼마 모아두지 못한 돈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집에만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채용공고를 확인하면서 지원을 하지만 떨어지기 일쑤”라며 “그 마저도 괜찮은 공고는 코로나19로 이전에 비해 턱없이 적어 이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어 깊은 한숨을 내쉬던 김씨는 “삶이 너무 힘들다”며 “다음 생에는 아예 안 태어나거나 굳이 태어나야 한다면 생명이 없는 돌맹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집 안에 갇혔다. 코로나19 여파와 고용시장의 빙하기가 함께 휘몰아치며 청년들이 집 안으로 점점 고립된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장시간 은둔생활로 무기력증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작년보다 늘었다 ... 10명중 6명 은둔생활 경험

지난 5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23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6명(59.8%)이 최근 '취업활동 중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작년과 비교해 약 6.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그 이유로는 ‘취업도 안되고 코로나19로 계속 집에 있게 돼서' (82.4%,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으며, 이어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37%), ‘계속되는 취업실패로 할 일이 없어서’ (27%),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2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 9월 25일 네이버 카페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란 일본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뜻하는 말로 집이나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담쌓고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은둔형 외톨이'로 불린다. (사진=독취사 캡처)


실제 회원수 453만명의 대형 취업준비 카페에는 코로나19와 취업난으로 방 안에만 있게 돼 '힘들다'는 취지의 게시글과 댓글이 다수 존재했다.

지난 9월 한 카페 회원이 올린 "이러다 히키코모리가 될 것 같다. 코로나19와 취업 준비로 인간관계가 두절됐다"는 게시글에는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공감의 댓글이 연이어 달리기도 했다. 그만큼 청년들이 집 안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 '사회'가 만든 현상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나타난 은둔형 외톨이 현상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며 "보통 개인의 성향 문제로 집 안에 은둔하는 경우 취업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일 조사결과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를 경험했다고 답한 이들은 김씨처럼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취업사이트 공고 검색 등 지속적인 구직활동' (54.5%), '입사지원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 (28.6%) 등을 했다.

임 교수는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고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돈'이 필요하다"며 "지금 청년들이 이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없으니 자꾸만 집 안에만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은둔형 외톨이 증가 현상에는 국가적 책임도 일부 있다"며 "청년들이 사회로 나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현재의 사회는 경쟁에서 탈락한 청년들이 재도전이 아닌 무기력에 빠지게 만드는 구조"라며 "정부가 일자리 증가 정책 뿐만 아니라 탈락된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금융지원, 의욕을 잃지 않도록 하는 문화·심리적 지원 등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 스냅타임 박서빈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